제목 | 평화는 하느님의 열정(熱情)이 이루신다. (마태10,34─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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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1-07-12 | 조회수6,699 | 추천수0 | 반대(1) 신고 |
2021년 7월 12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평화는 하느님의 열정(熱情)이 이루신다. (마태10,34─11,1)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세상의 돈, 명예, 의로움이 주는 그 평화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올바른 하늘의 평화의 길로 돌아와 살게 하시려고 칼을 던지시는 것이다. *칼(발레인 마카이)- 전쟁 용어로 ‘격렬하게 던지다. 자르다.(새로운 관계를 위해서다) 사람의 그 어떤 수고, 노고도 결코 평화를 줄 수 없다.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예레6,13-14) 13 정녕 낮은 자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정한 이득만 챙긴다. 예언자부터 사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짓을 행하고 있다. 14 그들은 내 백성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면서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고 말한다. = 평화는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열정이 이루신다.(이사9,6) 그 평화는 우리의 죄로 대신 징벌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미카5,4 이사53,5 에페2,14 참조) 곧 하느님의 사랑, 열성이 세우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만 누리는 평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세상의 것이 평화를 줄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가 속이고, 속고 있다. (요한14,27)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골로1,19-20)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예수)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가 주는 하늘의 평화가 아닌, 세상의 힘, 자기 열심히 이루려는 평화, 곧 안식을 줄 수 없는 그 위선의 평화로 뭉쳐있는 가족 관계를 칼로 가르신다. 칼은 하느님의 말씀이다.(에페6,17) 곧 말씀 안에 머물면서 그 말씀 안에 숨겨져 있는 우리 죄인들의 용서,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아가페)을 깨닫게, 찾게 될 때 세상이 주는 평화가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아는 그 잘라짐, 분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다. 육의 본능을 잘라내는 것이기에 속은 쓰리다. 그러나 영은 기뻐한다. (묵시10,10) 10 그래서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말씀)를 받아 삼켰습니다. 과연 그것이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습니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 가족들이 하느님을 믿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과 동시에 목숨과 같은 부모, 자식이다. 그들과 함께 하느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는 자신을 보고, 그 자신을 더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음이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 우리의 죄로, 대신 죄로, 저주로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가 달렸어야 할, 내 죄의 십자가였음을 믿는 것,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며 제자인 것이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결코 평화를 누릴 수 없다. 원수 같은 집안 식구가 현실의 내 십자가이다. 그 현실의 십자가 곧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원수 같은 식구(이웃)를 사랑할 수 없는, 품을 수 없는 그 내안에 원망과 미움, 시기를 보며 불가능한 그 나를 자각하고 인정하는, 그래서 그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십자가임을 깨닫고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리로 메는 것이다. 그랬을 때 하늘의 용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현실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에만 열심을 부린다면 그것은 구원, 곧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신앙이 된다. 현실의 십자가를 잘 지고 열심히 사는 그 삶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이를 악물고 잘 참아내며 잘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억지로, 이를 악물고 참고 하는, 그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선이라 하지 않는다. 마음으로 짓는 미움도 죄라 하신다. (루가11,39) 우리는 무엇이 제 십자가인지 다시 배워야 한다. (마태11,29-30)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십자가)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멍에, 십자가이기에 우리 죄가 용서로 가벼워져 편한 쉼(안식), 평화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하늘의 대속, 그 진리를 모르는 이들의 박해를 받는다(요한15,18~) 사실 세상은 관심이 없다. 박해는 교회 안에 있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 육의 명예, 영광, 그 목숨을 위한 삶은 영의 목숨, 곧 하늘의 생명을 잃어버린다. 우리의 생명은 말씀(예수)이다. (요한1,14) 그 말씀 안에 숨겨진 진리를 깨달아 간직하는 것이 생명이다. 곧 참 진리(빛)가 주님이심을 깨닫고 그분을 머리로 그분의 지체가 되면, 그를 가리켜 세상의 빛(진리)이라 하는 것이다.(마태5,14) 40 너희(진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진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 모든 예언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진리로 선포한다.(루가24,27참조) 그리고 그 예수님만이 하느님의 뜻, 계명을 목숨 바쳐 다 이루신 참 의인 이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길, 십자가의 대속을 진리로 믿고 간직하는 것이 하늘의 생명을 얻는 상(償), 福인 것이다.(요한14,6)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 시원한 물 한잔- 한 말씀이다. 말씀을 선과 악(도덕과 윤리), 그 둘로 주지 말고, 그러면 심판이니까. 선과 악을 짝하여 하나로, 곧 예수 그리스도(善)께서 죄(惡)를 대속하시고 하늘의 생명, 하늘의 의, 영광을 주신다는 그 한 말씀을 자신의 의, 영광을 위해 짐 같은 무거운 신앙으로 걱정과 근심 속에 사는 이들에게 준다면, 모든 것으로 부터의 자유, 그 시원함을 주는 것이고 그는 결코 하늘의 상, 하늘의 용서, 생명을 잃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 지금까지의 복음, 기쁜 소식을 오늘 우리에게 선포하시려 떠나오신 것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찾아오신 구원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 들여, 진리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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