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7.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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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1-07-16 | 조회수4,157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예수님과 제자들) 2021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12,1-8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 등의 일탈 행위가 뉴스에 종종 등장합니다. 잊을만하면 또 보도되곤 하지요. 사람들은 이에 크게 실망합니다. 사실 직접 만났던 사람도 아니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완전 남남인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실망을 표현합니다. 인터넷에 게시글을 올리거나, 기사에 댓글을 답니다. 또 주위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실망을 널리(?) 알리는 방법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상대방을 이상화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만들어온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완벽한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요? 완벽한 상대방을 내가 만들었고, 이에 혼자 실망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이런 사람을 공인이라고 하지요. 어떻게든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특히 조심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지금의 자리에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실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요? 절대로 안 되는 일일까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거부하고 보는 모습에서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어떤 죄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사람 자체만을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는다고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들은 단호하게 이야기하지요.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엄청난 죄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즉, 배가 고파서 밀 이삭 따 먹은 것을 추수 행위로, 밀 이삭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서 손을 비빈 것을 타작 행위라면서 안식일 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만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억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인해 새 율법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율법은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려서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율법 준수보다 현재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역할은 더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모든 이와 함께 주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톨스토이)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가장 큰 차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른일수록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주장만 힘주어 이야기하는 편견으로 가득 찰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릅니다. 무엇이든 받아들입니다. 특히 새로운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어느 동화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어른은 책 백 권을 읽어도 변할까 말까인데, 아이는 책 한 권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른의 생각으로 아이의 변화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양한 변화로 주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더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데, 그저 물질적인 기준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포용의 마음이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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