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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순히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일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17 조회수4,317 추천수1 반대(0) 신고

 

먼저 제가 신앙인에 관한 글을 쓸 자격은 없는 사람이지만 요즘 제가 많이 묵상한 내용입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 한번 묵상한 내용이라는 걸 감안하시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성당을 왜 다닐까요? 며칠 전 평화방송 유튜브에서 성당이라는 어원에 대한 짧은 방송을 봤습니다. 제목에 관심이 있어서 보니 교회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어원을 설명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성당인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할 때 교회하면 일반 개신교를 먼저 떠올리는 게 다반사일 겁니다. 이 교회라는 용어는 성경에서도 언급되니 일반 개신교 교회를 상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교회법에서도 성당을 정의하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보편적인 개념으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먼저 원론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성당은 천주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장소를 뜻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구별된 종교를 상징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당에 다니는 가장 근원적인 답은 자신의 영혼 구원에 있을 겁니다. 옛날 교리문답에 나오는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천사처럼 거룩하게 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개신교 때부터 늘 들은 말입니다. 교회는 죄인들의 집합소라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죄인이지만 막상 죄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거부반응을 가지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는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아마도 죄인이란 개념에 대한 기준을 다양하게 설정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신학적으로 죄인이라는 정의도 있을 수 있고 우리가 원론적으로 알 수 있는 용어에 대한 단순한 정의로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와 일반적으로 타 종교에서 말하는 죄와는 성격을 달리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중 하나가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이 사실은 익히 복음에서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신학적인 죄인이 무엇인가를 떠나서 단순히 그냥 평범하게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성당은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이곳은 일종의 학교와 같습니다. 신앙인들이 모여서 신앙에 대한 교육을 받고 학습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교육을 하는 직업에 있지만 교육이라는 것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교육이라는 범위에는 지식도 있지만 단순히 지식만 포함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교육에도 그렇지만 신앙 교육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성당이라는 신앙 학교를 다니면서 신앙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또 신앙인에 걸맞는 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교육을 받기 위해 다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가 되기 위해서 다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주된 목적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바로 이게 하느님을 아는 것이지 아닐까요? 하느님을 아는 과정이 바로 어쩌면 성숙되고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변화되는 과정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인생 중에서 허무한 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허무한 걸 정의하라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 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신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도 변화가 없는 신앙인을 꼽고 싶습니다. 그처럼 허망한 인생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봅니다. 지금 신앙에 대한 체험글을 쓰긴 합니다만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할 수가 없어서 좀 아쉽긴 합니다. 최대한 간접적으로 표현을 하려고 합니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지 이제 십 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근 십 년 동안 생활하면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요즘 절실히 피부로 느낍니다.

 

신앙은 신앙 교육을 하는 성당이라는 신앙 학교를 다니면서 신앙이라는 교육을 통해 신앙을 배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가 되는 게 아니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렇게 변화가 된 주변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근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앙인이라면 신앙인이기 이전에 일반 세상 사람들보다도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이라는 틈바구니 속에서 인간이 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하는 세상살이에 대한 기본 규칙이나 법도를 더 잘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보다도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예전에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수도원을 다니면서 많은 수도자분들과 대화를 통해서도 같이 공감한 사실이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는 면모는 신앙을 가진 후에 얻게 되는 신분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가지는 의미이지만 실제는 이미 신앙을 가지고 난 후에 신앙 교육을 통해서 성숙된 신앙인으로 변화가 될 수가 있지만 더 정확한 의미에서는 그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는 기본 자질이 함양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수도원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진짜 수도자는 수도자라는 신분이 된 후에 수도자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했습니다. 수도자도 수도자가 되기 전에 이미 수도자라는 신분은 아니였지만 이미 수도자와 같은 품성과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수도원에 입회를 한 후에 수도 생활을 해야만이 진정한 수도자의 길을 잘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도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실제 다양한 사례를 보고 또 듣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평신도에게 신앙인은 어쩌면 세상에서 평신도로서 수도자처럼 사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도 이런 사례를 적용할 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성당이라는 학교를 다닌다면 이미 다니기 전에 기본적인 신앙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 거야 좋은 건 사실이지만, 혹여 그렇지 못하더라도 신앙인이 된 이상 추후에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는 뭔가 차이가 나고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신앙인이라고 할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명목상으로는 신앙 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면 의문스럽습니다.

 

결국은 오랜 신앙 생활을 한 시간이나 세월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신앙 생활을 한 시간이나 세월만큼 하느님을 믿기 전과 비교하여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봤을 때 자신이 신앙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에 걸맞는 품위와 품성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허울만 신앙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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