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18.“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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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21-07-17 | 조회수3,06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마르 6, 30-34(연중 16 주일)
마르코 복음사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에 하나는 “예수님, 그분은 누구이신가?”라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 전례>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곧 예수님은 양떼를 돌보는 “진정한 목자”임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이 “참된 목자”의 상이 곧 메시아의 표상임을 말해줍니다.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당시의 제도권 지도자들(왕들, 사제들)이 하느님의 양떼인 백성들을 보살피지 않고 오히려 죽이고 흩어버리고 헤매게 하였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양떼들을 보살필 ‘진정한 목자’를 세워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목자가 다윗의 후손에서 날 것임을 선포하십니다. 그분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실 “우리의 정의”(예레 23,6)이신 주님으로 “참된 목자”로인 메시아로 예고됩니다.
오늘 <복음>은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세 가지로 그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친 제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이요, <둘째>는 몰려든 군중들을 “측은히 여기는 모습”이요, <셋째>는 양들을 “가르치는 스승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은 파견 받은 사도들이 돌아와 보고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을 만큼 군중이 몰려왔지만, 예수님께서는 지친 제자들에게 ‘가서 좀 쉬어라’고 배려하십니다. “쉬어라”는 이 말씀에서, <시편>과 <호세아서> 말씀의 진동을 듣습니다. “너희는 멈추고(곧 쉬고)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1) “이제 나는 그 여자를 외딴 곳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너는 나를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내가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호세 2,16-22)
그렇습니다. “외딴 곳”에서 벌어질 일은 바로 이 일, 당신을 낭군이라 부르게 되고, 당신이 ‘주님’임을 알게 되는 일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피곤함에 지친 제자들은 쉬게 하시면서도, 외딴 곳까지 먼저 달려 온 군중을 보시고(마르 6,32 참조)는 마치 목자 없는 양들처럼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마르 6,34). 그래서 환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길 잃은 양들을 먼저 돌보는 “목자”로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애틋한 사랑의 발로로 타인의 상황에 마음 아파함이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연기 나는 심지를 그냥 둘 수 없는, 차마 못 견디는 마음입니다. 사랑 때문에 안달이 나고 몸살이 나서 사랑을 건네주지 않고는 차마 못 베기는 까닭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에 몸살이 난 바로 그분’을 만납니다. 그토록 “가엾은 마음이 드신” 그분께서는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하셨습니다.”(마르 6,34).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굶주리고 목마른 것이 진리임을 아셨습니다. 그들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 외엔 결코 그 어떤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양들을 “진리”에로 인도하는 분이 바로 “참된 목자”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목자가 되려면, 먼저 ‘진리’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참된 양식’을 받아먹는 ‘양’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진정, 우리가 그분의 ‘양’이라면, 우리를 ‘측은히’ 여기시는 그분에게서 우리는 진리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참된 목자”는 단지 양떼를 흩어지지 않게 하고 헤매지 않게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흩어진 양떼를 인도하고, 헤매는 양떼를 보호하는 분, 양떼를 하나 되게 하고, 평화를 주시는 분”으로, 곧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에페 2,14)로 제시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에페 2,14-15)
이토록 예수님께서 우리 사이의 갈라진 장벽을 허물고, 우리를 새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에페 2,14-16)시키시고 평화를 이루신 “착한 목자”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일이 오늘 우리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할 일입니다. 서로를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는 일’ 말입니다. 아멘.
-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주님! 저를 외딴 곳, 당신의 거처로 데려 가소서. 당신 안에 쉬게 하소서. 쉼 안에서 사랑에 젖게 하소서. 당신 사랑을 알게 하시고, 당신을 낭군이라 부르게 하소서. 당신만이 진정한 쉼이오니, 당신 사랑의 속삭임 안에 쉬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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