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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신앙특강을 우연히 들었는데 유익했습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28 조회수3,543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개인적인 사정으로 타 본당에 오전 미사를 참례하러 갔습니다. 공교롭게 부산교구에서 오신 신부님께서 미사 후 신앙특강을 하게 된다고 미사 전에 신부님께서 공지하셨습니다. 강론을 신부님 특강으로 대체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에서 교부학을 전공하신 신부님이라고 하셨고 코로나 시대에 유익한 면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미사 후에 강의를 듣고 가자고 생각해 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늘 신부님의 강의를 듣고 난 후에 느낀 점을 한번 공유하겠습니다교황님께서 최근에 내놓으신 회칙을 가지고 강의를 하셨습니다. 어제와 오늘 이틀 하신 모양입니다.

 

먼저 생각한 게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와 같은 강의를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가능한 한 많은 신자들에게 이런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필요를 느꼈습니다. 우리는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서 영적인 양식을 얻어가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강론을 통해서만 영의 양식을 얻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신앙강좌를 통해 영성에 대해 많은 유익한 신앙교육이 선행이 된다면 메마른 신앙생활에 활기를 가져올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오늘 참 많이 하였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강의는 유튜브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강좌를 말입니다.

 

설사 유튜브를 통해서 많은 신부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같은 내용을 가지고 강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현장 강의와 방송 강의는 이미 현장감에서 느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강의는 현장에서 듣는 강의가 아주 좋은 것이 됩니다.

 

오늘 강의를 듣고서 희망사항이 있다면 어떤 교구를 막론하고 지금 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교구 차원에서 이와 같은 영성과 신앙을 굳건히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신자들에게 제공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냐하면 신자인 입장에서 봤을 때 하나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저 같은 사람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펜데믹 시대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신앙이 도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게 아니더라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실 신자들의 신앙도 위기로 몰릴 수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런 우려가 사실 조금씩 발생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번 생각해본 것입니다. 이런 우려가 기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내용은 오늘 강의 전체를 듣고 느낀 점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좀 생각을 한 것도 있습니다만 여기서 두 가지만 언급하고 싶습니다. 먼저 소화 데레사 성녀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비록 성녀는 짧은 수도 생활을 했지만 성녀가 되었습니다. 사실 성녀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성인과 같은 업적이라고 할 만큼 그런 업적을 남긴 것은 없지만 성녀가 되었습니다. 수녀원에서 다른 사람과 비슷한 일은 했는데 어느 누구는 성녀가 되고 누구는 그냥 평범한 수녀로 삶을 마감하였다는 사실을 보았을 때 성녀의 삶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소화데레사 성녀는 무엇 때문에 성녀가 되었을까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모든 일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했던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누가 알아주지 않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였습니다. 이게 일반 사람과 성녀와의 차이입니다. 사실 보통 사람은 어떻습니까? 무엇인가 하더라도 사람을 의식하는 게 일반적인 것입니다. 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좀 알아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입니다. 넓게 생각한다면 사실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알고 보면 부질없는 일입니다. 사람한테 인정받고 싶은 것은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사람보다 하느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생각을 하는 게 더 높은 자존감이 되는데 기껏 피조물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안달하는 모습은 자기 스스로 자기의 자존감을 깍아내리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 중요하게 느낀 것은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것이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향주삼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은사도 있고 믿음이 좋고 신심이 좋아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빈 강정과도 같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굳이 오늘 강의를 인용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공감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강의는 일반적인 내용이라 오늘 강의를 듣고서 따로 한번 묵상을 해본 게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말입니다. 세상은 살기 위해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을 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세상은 그렇다고 한다고 해도 신앙 안에서는 이런 경쟁은 어쩌면 폭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폭력은 물리적인 폭력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한 순간 감정 때문에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에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언어폭력이 됩니다. 언어폭력은 더 나아가서 살인과도 같은 무서운 죄를 짓는 결과도 만들어냅니다. 신앙 안에서 설령 경쟁을 부득불 해야 한다면 그건 서로를 짓밟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상생을 할 수 있는 경쟁이라면 그건 아름다운 경쟁이 될 것입니다. 상생이 되려고 한다면 남을 생각하는 마음인 사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신부님의 강의에서 언급하신 내용인데 저는 다른 의미로 이해를 하며 강의를 들으면서 순간 묵상한 게 있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고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 외에도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성당 제대 위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누가 더 힘든가를 생각해본다면, 누가 더 억울한가를 생각해본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의 상처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는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내용은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말은 들을 수는 있지만 많이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작은 십자가라도 십자가에 메달리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의 힘으로 우리의 영혼을 감미롭게 해 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 하루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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