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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꽃힌 신부 ★ 제3부 08 마귀도 누구도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작성자김은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03 조회수3,661 추천수2 반대(0) 신고

 


 

pp258-263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08 마귀도 누구도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2010. 06. 09.




모든 사람이 다 알고, 마귀까지도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교만’이다. 

마귀가 사람에게 들어오는 가장 쉬운 통로가 바로 ‘교만’이다. 
우리 원조 아담과 하와가 그 모습을 이미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않았던가?

공기와 같은 존재가 바로 마귀다. 
내 안에 교만함이 0.001%라도 남아 있으면 
마귀는 그 틈을 타고 나를 찾아 들어온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교만해지면 
곧 마귀의 조종을 받게 되어 영이 어두워지고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더욱 영이 열리고 지혜가 밝아져 점점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나중에는 하느님의 지혜를 받아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빛과 어두움, 하느님과 마귀는 양극의 대표적 예다.

영이 어두운 사람은 어두움을 못 본다. 
자신이 어두움 속에 있는데 어떻게 어두움을 볼 수 있겠는가? 
그놈이 다 그놈이다.

영이 밝은 사람은 어두움을 쉽게 볼 수 있다. 
영이 밝으면 밝을수록 어두움이 잘 드러나게 되어 있다. 


영이 어두운 사람은 지혜가 어두워져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거짓과 속임수의 귀재인 마귀에 조종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1요한 2,11)

그래서 
주위에서 충고를 하고 아무리 사실을 알려 줘도 전혀 소용이 없다. 
과거에 하느님의 엄청난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과거에 하느님의 지혜를 받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말은 청산유수지만 생활은 완전히 그 반대다.

영이 어두운 사람은 
그 영이 어두운 사람의 말에 그냥 홀딱 반해 버린다. 
유유상종類類相從, 끼리끼리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합하여 ‘선’을 이루듯이(로마 8,28 참조) 
어둠의 자식들은 서로 합하여 ‘악’을 이룬다. 

거룩하게 살려는 사람은 그들끼리, 
그 반대의 사람들은 그 사람들끼리 모인다. 
서로 ‘취미’가 달라서 반대의 것들에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취미가 같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내가 영성 지도를 하는 ‘마리아처럼’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하느님에 대한 취미가 없는 사람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반면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방문을 한다. 
하느님이 이 커뮤니티를 통하여 영혼을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하느님 얘기로 날 새는 줄 모른다. 
입에서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튀어나오느냐에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정도를 알 수 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사람도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에 대한 얘기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세상일이나 사람들 이야기만 나온다.

골프를 좋아할 때 입만 열면 내 입에서 골프 얘기가 튀어나왔었다. 
골프 얘기로 밤을 새도 지겹지가 않았다. 
사람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게 되어 있다. 
이제는 입만 벙긋해도 하느님에 관한 얘기만 나온다. 
하느님께 내맡긴 후의 큰 변화다. 


나는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느님 생각만 하면 내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흐른다. 
그것을 정말 자랑하고 싶다. 
예전의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이곳에 
당신께 내맡긴 사람들의 공간인 
기도원(수도원)을 세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방해받지 않고 밤새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는 집 
‘예수님처럼’을 세워 주시겠다고 말이다. 
그곳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날 새는 줄 모르고 하느님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성모님의 집 ‘마리아처럼’을 세워 주신 것처럼, 
예수님의 집 ‘예수님처럼’을 세워 줄 영혼을 언젠가 보내 주실 것이다. 
‘마리아처럼’ 옆에 ‘예수님처럼’이 들어설 것을 나는 아주 확신한다.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 ‘엄마 앞에서 짝짜꿍!’이 많이 많이 생각나시는가 보다.


그런데 
죄를 짓는 사람들도 함께 있으면 날 새는 줄 모른다. 
취미가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당연하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 해도, 
‘한 번 천사는 영원한 천사’가 아니다. 

대마귀 루치펠이 한 번 대천사였으면 영원한 대천사인가? 
대천사 루치펠이 대마귀 루치펠이 된 일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 한 번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100% 다 내맡기면 
그것으로 그만 끝이다. 

100% 내맡긴 이은 절대로 절대로 ‘교만’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게 바로 ‘거룩한 내맡김의 신비’다.

나를 비롯해 지금 내맡긴 삶을 살고 있는 
100% 내맡긴 이들을 잘 지켜봐 주기 바란다. 
지금 이 말이 교만이라고?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도저히 그럴 수 없다. 

누구는 자기 안에 하느님이 없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자신을 분별하기 어려우면 나에게 말하라. 
내가 분별해 드리겠다. 
내가 받은 은사 중에 ‘분별의 은사’가 있는 모양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내맡겨 드리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의 부족함과 죄마저도 다 책임져 주신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드렸는데 
부족하고 죄스럽다고 책임져 주지 않으실 분이 절대 아니다. 

내맡기게 되면 그 단계까지도 가능하고 
사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그 이상의 ‘하느님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 주실 것을 
나는 또 확신한다.


하느님께 내맡기면 성모 마리아처럼, 예수님처럼 될 수밖에 없다.
맨 마지막에는 ‘하느님처럼’ 아니, 하느님의 새끼(자녀)가 된다. 

내맡기게 되면, 신나는 생활이 시작된다.
죽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서부터 정말로 신나는 생활을 할 수 있다.

‘내맡김’으로 나와 함께 
정말로 신나고 또 신나는 생활로 들어가지 않겠는가?

 



http://cafe.daum.net/likeamaria (다음 "마리아처럼" 카페 바로가기) 

 

 

 

 

이해욱 신부님의 책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가 출간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참으로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사는 것,

즉,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삶입니다.

 

 

 

책 구입 문의: '끊임없는 기도모임' 카페

http://cafe.daum.net/Praywithoutceasing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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