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의 신분에서...福者 김천애 안드레아 님 순교일; 8월27일 |
福者 김천애 안드레아 (순교일: 8월 27일) |
고향을 알 수 없는 김천애(金千愛) 안드레아(Andreas)는 ‘전라도의 사도’로 유명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중, 그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당시 유 아우구스티노의 집은 전주의 초남이(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었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에 김 안드레아는,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는 고결한 마음으로 신자의 본분을 지켜 나갔다.
그는 진리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으며, 교리의 가르침을 굳게 지킬 줄도 알았다.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전라도에서는 유 아우구스티노가 가장 먼저 체포되었다.
뒤를 이어 김 안드레아도 그의 맏아들인 유중철 요한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이내 감영에서는 김 안드레아에게 문초와 형벌을 가하면서 배교와 밀고를 강요하였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굳게 증언하였다.
그리고 그 해 7월경 동료들과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김천애 안드레아의 신앙은 형조에서도 한결같았다.
그는 어떠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십계명을 버릴 수는 없으며, 한 번 죽는 것인 만큼 죽음을 달게 받겠다.”고 진술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전주로 압송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8월 27일(음력 7월 19일), 또는 8월 28일로 그의 나이는 41세였다.
그가 형조에서 한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천주교는 큰 도리요 지극히 훌륭한 행위로, 여러 해 동안 깊이 믿어 이미 뼛속까지 사무쳐 있습니다.
(저에게) 형벌과 죽음은 영예로운 일이니, 어찌 마음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범한 죄를 돌이켜 보건대, 오직 빨리 죽기만을 원할 따름입니다.”
*124위 복자 자료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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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사도 유항검 오스틴 댁의 노비로서 주인에게서 신앙을 배웠고 주인이 체포된 후 그의 아들 유중철 요한과 함께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고 다시 전주로 와서 순교할 때까지 굳게 신앙을 지켜 41세로 참수 순교의 영광을 입으신 복자 김천애 안드레아 님이시여 저희도 현세에서의 모든 유혹을 완전히 이겨낼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