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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26 조회수3,342 추천수1 반대(0) 신고

 

신앙인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늘 우리는 강론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단 한마디의 말로는 명쾌하게 설명을 하기엔 힘들 것입니다. 관념적으로는 알 수 있지만 쉽게 잘 알기가 힘든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해답을 오늘 복음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준비입니다. 역사를 보더라도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나라의 안위를 좀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이이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여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대의 흐름과 판세를 잘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도 여러 가지로 임진왜란에 대비해서 준비를 한 것 때문에 실제 난이 발생했을 때 그 덕을 본 걸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학생이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는 시험에 임박해서 벼락치기를 해서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실력을 다져놓아야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험이라는 것은 누구나 긴장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열심히 준비한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시험이라는 걸 앞두고는 긴장이 되긴 하지만 자신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최선을 다했다면 두렵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담담하게 임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평소에 열심히 성실히 공부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옵니다만 주인이 종에게 일을 맡기면서 분부한 게 있습니다. 제 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이렇게 하는 종이 슬기롭고 충실한 종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제 때라는 것에 한번 주목을 하고 싶습니다. 시간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뭔가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할 시간에 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깨어 있어라는 말씀에 준비제 때이 두 가지를 잘 연결해서 묵상을 하면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 수도 있을 겁니다. 바로 준비를 하되 성실하게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 큰일을 해야만 큰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큰일에도 충성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례력으로 보면 앞으로 3개월 후면 대림을 맞게 됩니다. 그때에 강론에도 깨어 기다림이라는 주제로 강론을 많이 듣게 됩니다. 매년 이런 전례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를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항상 이런 방식으로 준비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겁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런 준비를 하면서도 매년 그 시간만큼은 성실하게 준비를 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 반면에 항상 형식적으로 늘 하는 것이니 형식에만 그친 사람도 있을 겁니다.

 

답은 나옵니다. 학생으로 비유하면 형식에만 그친 사람은 그냥 시계추마냥 학교를 다닌 학생과 같습니다. 그런 학생은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없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준비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지금 준비하는 습관을 가지지 않으면 나중에 어느 시점에 가서 준비를 하면 되지 하고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그게 쉽지가 않을 겁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의 유튜브 강론을 얼마 전에 들은 것에도 나옵니다만 평소에 뭔가를 하지 않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그걸 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이라는 이 말이 상당히 와 닿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뭔가를 준비하는 것은 결정적인 한 순간을 위해서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결과가 일어나는 것 같지만 실제는 그 한순간에 그간 했던 모든 노력의 결과물이 나온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도 미루는 습관이 약간 있습니다. 공과금을 내려고 할 때 만기일을 기억합니다. 근데 어쩌다 보면 그 만기일을 놓치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연체료는 얼마 되지 않지만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남았다고 생각하고 늑장을 부리다보면 예상치 못하는 일로 인해서 납부를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처럼 우리와 예수님과의 만남도 그럴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세상일은 미루어서 어떤 일이 그르치게 된다면 뒤에라도 수습을 할 수가 있지만 우리의 신앙 여정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저희를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실 수 있는 분이지만 문제는 우리는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유한한 시간도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은 가면 갈수록 단축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하느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냥 늑장을 부리다가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운명의 시간이 왔을 때 울며 이를 가는 후회의 날을 맞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극은 이 세상에서 지금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는 영혼의 공간에서 다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그런 비극을 맞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게 깨어 준비를 잘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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