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시옵소서’가 아닌 ‘이미 주셨음’에 감사하는 깨달음을 위한 것이 신앙생활이다. | |||
---|---|---|---|---|
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1-09-06 | 조회수3,41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1년 9월 6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주시옵소서’가 아닌 ‘이미 주셨음’에 감사하는 깨달음을 위한 것이 신앙생활이다. 복음(루카6,6-11) 6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 오른손은 '오른, 올바르다'의 하느님의 뜻, 진리를 뜻한다. 곧 오른 안식(일)에 대한 생각,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아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선악과(善惡果)로 따먹은 손이다. (창세3,4-6)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 뱀의 유혹(誘惑)을 먹고, 뱀의 눈으로 보고, 하느님의 뜻(말씀)을 자신의 욕망(慾望)을 위한 선악과로 따먹은 손이다. 곧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은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선악(善惡)을 자신이 주관하게 되었으니, 즉 선이 악을 품고(대속) 생명(안식)을 주시는 그 하느님의 약속, 계약의 말씀에서 떨어졌으니 스스로 선은 행하고, 악은 짓지 않는 그 스스로의 열심, 의로움으로 안식(安息)에 이르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善惡)의, 사람의 규정(規程)과 교리(敎理)로 열심히 지켜야 했기에 쉼, 안식을 누려야 하는 안식일에, 법을 지켜야하는 그 안식일 법(교리)에 매여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을 사는, 오른 안식의 의미, 정신을 잃어 다른 안식(일)을 살았던 그 생각(生覺),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된 그 안식의 의미, 신비를 올바로 깨달았다면 주일(主日)이 어찌 짐 같이 느껴지겠는가. 안식이신 주님과 함께하는 그 시간(주일)을 고대 하며 기다릴 것이다. 오늘독서(콜로1,27)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 오늘 안식이신 분 앞에서 그분을 몰라보는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 그들이 마음(생각)이 오그라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7 그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 뱀의 유혹을 먹고,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의 자리에 앉은 욕망의 자리, 그래서 스스로 선악을 판단(判斷), 주관(主管)하는 자리, 그래서 아담 처럼 스스로 ‘부끄럽다’. 자신을 판단한 자리, 그래서 늘 죄의식에 시달렸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들 가운데 있는 너희의 죄악(罪惡)을 대속(代贖)하시고, 너희에게 안식(安息)을 주시는 분 앞에 ‘서라’는 말씀이다.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안식일에 너희 선악의 법으로 사람에게 부끄러움(죄)을 주는 그 심판(審判)으로 남을 해치는(죽이는)것이 합당(合當)하냐? 하느님께서 선이 악을 대속 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그 진리로 부끄러움(죄)을 없애는 그 용서(容恕)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합당하냐?‘ 물으시는 것이다.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 말씀은 듣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루가4,21) 신비(神秘)다. 그 신비(미스테리온-비밀)의 말씀으로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을 사는 것이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말씀을 진리(眞理)로 받으면 하늘의 용서, 생명, 평화, 그 안식을 받지만 율법(제사와 윤리)과 사람의 규정과 교리, 도덕과 윤리로 받으면 늘 부끄러움, 곧 죄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율법(제사와 윤리)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그 완성된 안식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놓치고 있다. 예수님의 “다 이루어졌다” 하심을 잊고 놓친, 그 잘못된 생각(마음)으로 오그라든 신앙(信仰)을 살고 있는 것이다. 첫째는 성경(聖經)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기도) 하느님, 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미사를 드리면 안 된다. 그래서 하느님! 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로 기도하며 미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그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달라고,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오늘의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성령(聖靈)께 의탁(依託)해서 말씀을 열심히 보고, 묵상 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깨닫고 믿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요한14,26 15,7참조) 미사(Missa)는 물론, 성사생활,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말씀을, 사람의 지혜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진리(眞理)로 가르치며 그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묵상(黙想)하고, 기도(祈禱)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화답송으로 드리는 시편의 기도(62,6-9) 또한 이미 다 이루어졌음을(받았음을) 아는, 시편을 그렇게 보는 실력(實力)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예수님 처럼 실천하자!, 실천하라!’ 하기 전(前)에 내가 먼저 예수님의 실천(實踐)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런 존재(存在)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안식)을 내가 먼저 받았을 때, 오른 사랑(안식)을 이웃에게 전(傳)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선악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인간들의 선악으로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한다면, 그래서 다른 하느님, 다른 사랑(안식)을 이웃에게 전한다면 모두 멸망(滅亡)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게 되는 것이다.(마태15,14 참조)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입당송) 하느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당신의 법규는 바릅니다.(시편119,137) ☨천주의 성령님! 우리 가운데 계신, 안식이신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 “손을 뻗어라”하신 말씀이 우리 마음에 아루어지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