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9.16."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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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21-09-15 | 조회수3,17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루카 7, 36-50(연중 24주 목)
오늘 <복음>에서는 바리사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 때 있었던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카 7,37-38)
이 자리에서 ‘죄 많은 여인’이 영광을 입습니다. 죄 많은 그녀는 감히 예수님의 앞쪽에 나서지도 못하고 뒤쪽 발치에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셨습니다. 자신의 머리 위에 간직한 가장 고귀한 머리카락으로 땅에 붙이고 있는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그 발에 당신 입을 맞추고 그 발에 자신의 전부를 쪼개어 부수고 깨뜨려 그 발에 붓고 발라드렸습니다. 하여, 그 옥함의 사랑의 향기는 온 집안, 온 고을로 퍼져나갔습니다. 교부들은 이 ‘죄 많은 여인’을 교회에 비유합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교회 말고는 누구도 그런 향유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죄인의 모습을 취하셨으니, 교회가 창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루가복음 해설)
이러한 “창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아름다움은 뒤에 나오는 예수님의 선언으로 그 향기를 뿜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7,47)
그렇습니다. 오늘도 내가 있는 우리 집, 우리 공동체 안에는 ‘죄 많은 여인’(교회)이 부은 사랑의 향유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공동체에 파고 든 그 향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내게 사랑이 없어, 사랑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까닭이 아닐까요? 사실, 오늘도 내 형제들은 예수님을 섬기며 발을 닦아드리느라 여념이 없는데도, 그들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 것은 결코 닦아드릴 머리카락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리를 수구려 발까지 자신을 낮출 줄 모르는 까닭이 아닐까요? 아직도 향유를 나를 치장하기 위해 쓰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요? 값비싼 것을 낭비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물질에 애착하고 있는 까닭은 아닐까요? 사실, 오늘도 ‘죄 많은 여인’인 교회는 옥함을 깨뜨려 향유를 쏟아 붓듯 내 발에 사랑이 쏟는데 아직 내가 그 사랑을 보지 못함은 아직도 구린내를 담고 있는 나를 깨부수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요? 아직도 자신을 감추어 둔 채, 다 부수지 않은 까닭이 아닐까요? 결국,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까닭이 아닐까요? 그러나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온 집안, 온 공동체를 사랑의 향유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그러니 이제는 온 집안에 가득 퍼진 이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에 종일토록 취할 일입니다. 내내 토록 찬미할 일입니다. 그 향기 온 몸에 묻혀, 바다소라처럼 그 향 되어 날릴 일입니다. 오늘 하루 이 그리스도의 향기에 흠뻑 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향기가 되어 세상에 뿜으시길 바랍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의 불순한 입이 당신의 발에 입 맞추고 거룩해지게 하소서! 저 자신을 깨뜨려 형제들의 발에 입 맞추는 사랑의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예수님의 발을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카 7,38) 주님! 온 집안에 사랑의 향기가 가득한데도 그 향기를 맡지 못함은 제 안에 사랑을 사랑으로 보지 못하는 불순이 낀 까닭입니다.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는데도 그 숨 가쁜 사랑의 숨소리를 듣지 못함은 제 안에 사랑이 없어서 사랑의 마음을 듣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아직도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향유가 필요한 까닭에 제 자신을 위한 자애심으로 가득 찬 옥함을 깨부수지 못한 까닭입니다. 닦아드릴 머리카락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리를 수구려 발까지 자신을 낮출 줄 모르는 까닭입니다. 물질을 버려 예수님을 차지하는 여인이 되기보다, 물질을 차지하고 예수님을 버리는 유다가 되고 마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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