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의 불의한 재물? (루카16,9-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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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1-11-06 | 조회수90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1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하느님의 불의한 재물? 복음(루카16,9-15)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 먼저 생각(生覺)해 보자. 인간들 중에 누군가를 영원한 거처(居處)로 맞아 들일 수 있는 이가 있나? 없다. 하느님, 예수님 뿐이시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여기에서 친구(親舊)는 하느님, 예수님이시다. (요한15,13)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불의(不義)한 제물로 우리 죄인(罪人)들을 위해 목숨을 내 놓으시고 친구(親舊)로 삼아 주셨다. (2코린5,21참조) 그렇게 예수님의 공로(功勞)로 친구까지 된 우리가 그분의 친구로서 행(行)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의 다른 친구들, 곧 앞 15장 4절 이하~ ‘길 잃은 양들을 찾는 일, 또 그분의 목소리(말씀)을 깨닫지 못한 이들을 찾는(요한10,16참조), 그 친구를 만드는 일’이다. 그 일을 하라 하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친구 사귐, 곧 친구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그 친구 사귐의 행위를 내 놓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친구를 사귀라 하신다. 그 말씀은 너희도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그 ‘친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인데, 불의한 재물(財物)로 친구를 찾는, 사귀는 일이다. 곧 불의(不義)의 재물(財物), 내 목숨과 같은 이 세상 재물을 희생하여 친구를 사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세상의 것을 ‘불의한 재물’이라 하신 것일까? 하늘의 것(재물)만 의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불의한 재물’이 하늘의 뜻(일)을 위해 사용되었을 때, ‘의(義)의 재물(財物)’이 되는 것이다. 보이는 우주(宇宙)만물(萬物)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진리)을 깨닫는 것이 선(善), 새 창조의 새 사람이 되듯 말이다. 그 모든 것이 의로우신 분, 예수께서 불의한 재물로 돌아 가셨기에 가능한 것이다. 본문에서 재물이 없어질 때, ‘에클리퍼’는 ‘쇠하다. 죽다. 멈추다’라는 뜻을 지닌 ‘에클레시포’의 가정법 동사로 ‘호탄’과 함께 재물이 다하여 없을 때, 곧 더 이상 세상 재물을 사용할 수 없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원한 거처(居處)’라는 대비적 표현을 볼 때 없어질 때란, 내세(來世)에 들어 갈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 영원한 거처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힘인 재물이 우리가 추구(追驅)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아낌없이 사용하여 친구(親舊)를 만들어 내는 데에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 힘(재물)에 집착(執着)하지 않고 그 힘을 사용하여 다른 이의 유익(有益)을 구(求)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일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인(원수)인 우리(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심으로 친구가 되어 주셨듯 말이다. 그렇게 아직 깨닫지 못한 그분의 또 다른 친구(親舊)들을 찾아 드려야 한다. 10 아주 작은(세상)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하늘)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친구사귐)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세상 재물(財物)에 집착(執着)하고 이기적(利己的) 이어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참된 것, 곧 하늘의 재물(힘- 생명)을 맡기겠느냐? 하신다.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 세상 재물도 우리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것이다. (1코린4,7) 7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 하느님께서 주신 세상의 것, 힘을 잘 사용할 줄 알아야, 친구를 만들어야, 하늘의 몫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세상의 힘(재물, 명예, 의)보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을 더 원하며 사랑하는가?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 돈(만모나스)- ‘돈의 신(神)’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힘, 곧 세상의 명예, 의로움이 큰, 그 부자(富者)를 뜻한다. 성경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돈’이라 한 곳이고,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돈보다, 목숨보다 더 중(重)하게 생각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은 것이다. 그러니까 ‘돈’이란~ ‘세상에서 힘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곧 ‘인간의 지혜, 지식, 명예, 의로움, 지위’ 등이다. 바리사이들은 세상의 재물로 자신의 의로움을 위한 친구를 만들었지 하느님의 의로움을 위한 친구로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그리스도인’ 이면서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의로움과 관계없는 자기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들이 많기에 하신 말씀이다. 성인전(聖人傳)을 읽다보면 그리스도의 의로움, 복음과 관계없는 그 사람의 의로움을 전하는 내용들이 간혹 있다. (성인이 그랬다 라기 보다 성인전을 쓴 사람들이 그렇게 전한다는 것이다) 그렇듯 재물로 친구를 사귈 때, 조심해야 한다. 곧 자기(自己) 의로움으로 쌓이지 않게,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 받지 않도록, 말이다. 재물(財物)로 친구를 사귈 때,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을 주는 사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독서 로마서(16,3-27) 에서도 “3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8절, 주님 안에서, 9절, 그리스도 안에서, 13절, 주님 안에서‘ 22절 주님 안에서 27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하고 마무리 한다. (로마16,2) 2 성도들의 품위에 맞게 그를 *주님 안에서 맞아들이고, 그가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 도와주십시오. (1코린1,31)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코린9,2) 2 내가 다른 이들에게는 사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여러분에게는 분명히 사도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 사도직의 증표입니다. (에페1,11)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에페2,13.21) 13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요한3,18)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2요한1,1) 1 원로인 내가 선택받은 부인과 그 자녀들에게 인사합니다. 나는 그대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이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3요한1,1) 1 원로인 내가 사랑하는 가이오스에게 인사합니다. 나는 그대를 *진리 안에서 사랑합니다. (골로1,28)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친구를 사귈 때 하느님의 선, 의로움을 드러낼 줄 알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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