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라기(9) 천벌받을 것들아 (1:14-2:2) | |||
---|---|---|---|---|
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2-01-12 | 조회수484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2. 1. 12. (공동번역)
말라기(9) 천벌받을 것들아 (1:14-2:2)
14 천벌받을 것들아, 서원제물로 바칠 만한 것이 양떼 가운데 있는데도 주께 바친다면서 쓸모없는 짐승을 골라 제물로 바치는 것들아, 나는 위대한 왕이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뭇 민족이 나의 이름을 두려워하리라. 1 너희 사제들에게, 나 이제 이 분부를 내린다. 2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기릴 생각이 없으니, 너희에게 내릴 것은 재앙뿐이다. 축복 대신 저주를 내릴 수밖에 없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나의 이름 기릴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저주를 내리지 않고 축복을 내리겠느냐? (1:14-2:2)
지금까지 하느님께서는 제사장들의 제사(祭祀)행위에서 온갖 부정의 온상인 것을 적나라하게 지적하셨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까지 다 들추어내어 그들의 부정직하고, 불신의 태도들을 예언자를 통해 낱낱이 꾸짖었다. 우리는 온 세상을 두루 감찰하시는 하느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법도를 따라 바르게 살고 옳게 행하는 것을 조금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 제사장들이 흠 있는 제물을 끝없이 계속 드리는 부정을 범하는 죄악이, 흠 없는 짐승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없음과 육신의 과욕으로 말미암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7) 다시 하느님께서 들추어내는 악(惡)한 죄악의 실상(實狀)을 생각하여 봅시다.
14절에서 보면 “천벌받을 것들아, 서원제물로 바칠 만한 것이 양떼 가운데 있는데도 주께 바친다면서 쓸모없는 짐승을 골라 제물로 바치는 것들아,”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소유의 모든 것을 다 헤아리시고 계신다. 하느님을 속이는 자는 엄청나게 무지(無知)한 신앙인이다. 그들은 양떼 가운데 분명하게 있는데도 없는 냥으로 생각하고 흠 있는 것으로 드린 것이다. 이를 하느님께서는 “사기치는 일”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하느님께 사기(詐欺)친다고 속을 수 있는 분이신가? 어찌 하느님이 사람에게 속을 수 있단 말인가? 갈라디아서6:7절에서 “하느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고 하셨다. “서원(誓願)하는 일”은 무슨 소원이 있어서 이룸 받기를 원하였는데, 하느님의 응답과 도움으로 그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에 어떠한 감사를 하겠다는 서약의 제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서약한 것을 지키려니까 자기의 가진 것이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사기를 치는 일을 행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무서운 단언을 하셨다. “저주(詛呪)를 받는다”는 것이다. 공의(公義)로우시게 판단하시는 하느님의 엄중한 벌, 보응,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 거룩하신 하느님께 율법에 따른 바른 예배, 지극한 정성으로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① 하느님은 “큰 임금”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임금일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만물을 통치하시고 다스리며 주관하시는 위대한 위엄의 왕이신 분이시다. 우리 하느님이 이처럼 위대하신 분이심을 믿고 경외함으로 왕을 섬김처럼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곧 온전한 예배, 지극한 정성을 드리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너무나 마땅한 것이다. 특히 우리가 큰 임금이신 하느님 앞에 어떠한 신분의 사람인가? 베드로전서2:9절에서 “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2:5절에서 “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사제가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십시오. ”고 하셨다.
②“뭇 민족이 나의 이름을 두려워하리라.” 하셨다. “두려워하다”는 말은 공포심에 사로잡히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 두려움은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공경하고 경외(敬畏)심을 갖는 마음을 뜻한다. 참으로 하느님의 성호는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멸시 당할 수 없는 성호이며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과 피조물로부터 경외하심으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신 것이다.
이사42:8절에서 “나는 야훼다. 이것이 내 이름이다. 내가 받을 영광을 뉘게 돌리랴? 내가 받을 찬양을 어떤 우상에게 돌리랴? ”하셨다. 이사48:11절에서는 “내가 이렇게 한 것은 오로지 나 스스로를 위하는 마음에서였다. 어찌 나의 이름에 욕이 돌아 오게 버려 두랴? 어찌 나의 영광을 남에게 넘겨 주랴? ”고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이 자기 백성에게서 크게 모욕을 당하심으로, 이제는 온 열방(列邦)의 민족들로부터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제 2 장
1.제사장(祭司長)들에게 대한 엄중한 문책(問責)
1절에서 “너희 사제들에게, 나 이제 이 분부를 내린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직접 내리시는 강력한 명령을 의미한다. 이 “명령”의 취지는 범죄(犯罪)한 제사장들에게 하느님의 경고의 의미가 크다. 그러면서 또 제사장들에게 청종(聽從) 즉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하느님의 자비가 담겨있는 메시지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범죄(犯罪)한 이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다. 그 뜻이 이 명령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1) 하느님의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하심
1절 中 “너희에게 내릴 것은 재앙뿐이다. 축복 대신 저주를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느님의 복의 근원이면서도 화와 저주의 근원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내린다”고 했다. 위에서 하느님이 직접에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저주는 조건부(條件附)의 성격을 뛰고 있다. 하느님의 저주(詛呪)를 내리겠는다는 그 조건(條件)은 ①“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이다. 주의 명령을 듣는 것은 큰 복이다. 듣는자에게 모든 불행과 멸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때문인 것이다. 하느님은 확고하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順從)치 아니하면 신명28:15절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않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지시하는 그의 모든 계명과 규정을 성심껏 실천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온갖 저주가 너희를 사로잡을 것이다. ”라고 하셨다. 지금은 주의 말씀을 듣고 “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말아라.(히브3:8)” 온전히 순종할 때인 것이다.
② 주의 말씀을 마음으로 지키지 아니할 때라는 것을 명시하였다.
-2절에서 보라! “내 이름을 기릴 생각이 없으니,” 저주를 내리겠다는 것을 예언자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선포하셨다. 주의 말씀(명령)은 마음에서 성심것 받들어서 순종하여야 한다. 지금껏 제사장들은 율법에서 벗어나 사욕을 쫒는 억지 논리(論理)와 이기심(利己心)적인 생각으로, 또 코웃음 치는 비관적인 의식으로 행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의 명령을 마음에 깊이 새겨서 감심(甘心)과 두려움으로 처신할 것을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맡은 사명감의 중대성을 생각하면서 그리할 것을 권하는 말씀이다.
③“내 이름을 기릴(영화) 생각이 없으니,”이다. 하느님만이 최상 최고의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의 삶의 제일 목적이다. 바울은 구원받은 몸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고 하였다. 그리고 고린도전서10:31절에서는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 ”고 하였던 것이다. 하물며 하느님의 나라에 거룩한 직분(職分)자 세움을 입었고 최고의 중직인 제사장의 직무를 맡은 자로서 거룩하신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본질적인 기본사명이요, 기본적으로 행할 최우선의 사역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전처럼 여전히 하느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욕되게 하면서,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면서, 영화롭게 하지 않을 진데, 하느님의 엄청나고 무서운 저주를 초래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하셨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