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라기(15)그가 오는 날, 누가 당해 내랴? (말라3,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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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2-01-18 | 조회수59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2.1.18.(공동번역)
말라기(15)그가 오는 날, 누가 당해 내랴? (말라3,1-3)
1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 그는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다. 그가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 보아라. 이제 그가 온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2 그가 오는 날, 누가 당해 내랴? 그가 나타나는 날, 누가 버텨 내랴? 그는 대장간의 불길 같고, 빨래터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풀무질하여 은에서 쇠똥을 걸러 내듯, 레위 후손을 깨끗하게 만들리라. 그리하면 레위 후손은 순금이나 순은처럼 순수하게 되어 올바른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게 되리라. (3,1-3)
말라기2,17절에서 자기 백성들은 말로 하느님의 공의에 대한 불신과 무시를 크게 나타내었다. 하느님을 욕하고 비방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을 예언자는 알고, 공의(公義)의 하느님께서는 살아계시며, 여전히 공의로 역사하심을 예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예언(預言)의 중심은 400년 후에 있을 메시야의 도래(到來)를 통해서 하느님의 공의를 보여주려고 말씀하고 있다.
1. 먼저 내 특사(特使)를 보내리라고 하셨다.
“내 특사”는 대개 주의 천사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내 특사”라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잡이 곧 선구자(先驅者)었던 세례자요한을 가리킨다. 하느님은 세례자요한을 “내 특사” 곧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자(使者)라고 하셨던 것이다.
1) ‘내 특사’ 세례자요한의 한 일은 무엇인가?
1절에서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이라고 하였다. “길을 닦게 한다.“ 는 것은 왕의 위엄스러운 행차가 있기 전에 길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무너진 곳을 보수하며 평탄(平坦)케 하는 일을 하는 것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이 말씀은 이사40:3절에서 이사야가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여기서는 하느님의 공의(公義)를 나타내는 분명한 뜻을 전달하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2.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到來)
1) 메시야는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라고 하였다. 자기 백성들에게 메시야의 도래는 간절한 소원이었다. 곧 언제나 기대하는 마음이고, 고대하며 어서 오기를 바람의 주시었던 것이다.
2) 메시야의 도래는 어떻게 나타날 것이냐? “그가 곧(홀연히) 나타나리라.”고 하셨다.
①“곧(홀연히)”는 ‘즉시’를 의미함보다 ‘갑자기, 생각하지 못한 때’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의 강림(降臨)을 희망(대망) 하였지만 영적인 나태와 안일에 젖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한 때에 오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메시야의 도래가 오래되고 지체됨으로 인하여 열 처녀들처럼 낙심되어 졸며 잘 때, 뜻밖에 오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②“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고 하였다. 주께서 성전에 임한다는 것은 다른 예언자도 예언하였다. 하께 예언자는 “뭇 민족도 뒤흔들리라. 그리하면 뭇 민족이 보화를 가지고 오리니 내가 내리는 영광이 이 성전에 차고 넘치리라. 야훼의 말이다.” (하께2:7)고 하셨다. 이 예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소년시절 성전에 올라가심(루가2:22) 뿐만 아니라, 성전을 중심해서 많은 사역을 하심을 뜻하는 것이다. 실로 예수님은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 하시면서 가까이 하셨고, 성전 정화(청결)를 두 번이나 하시었다. 언제나 성전을 중심해서 백성들을 가르치기를(마태26:55, 루가21:37 등) 힘쓰셨던 주님이시었다.
3) 나타나시는(임하시)는 주는 어떤 분이시냐?
“ 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 ”라고 하였다 “기다리다”는 다른 예언자들에 의해 예언되었던 주님의 오심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의미한다. 주님의 초림(初臨)이 성취되는 때에 이스라엘에 그의 도래를 간절히 바라는 이가 있었다. 루가2;25절에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 했다. “구원(언약)”은 하느님과 그 백성사이의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의 내용은 주님에 의해서 말씀되기 시작한 자기백성들의 ‘구원(히브2:3)’을 말하는 것이다.
3. 주님께서 초림(初臨)하시는 성격
범죄한 자기 백성들에게는 그날이 마냥 좋은 날만이 아님을 말씀하여 준다. 2절에 “그 그가 오는 날, ”이라 하였는데, 이 날은 주님의 초림의 날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재림(再臨)의 날의 성격과 같음을 말씀하여 준다. 왜 그리한가?
1)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리스도 앞에서 감히 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2절에서 “누가 당해 내랴? 그가 나타나는 날, 누가 버텨 내랴?”라고 했다. 이 말씀은 타락한 본성 그대로 초림하시는 그리스도 앞에서도 결코 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초림하신 주님 앞에서도, 주님 앞에 나오는 자는 회개하지 않거나 그를 믿지 않는 자로써는 별수 없이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3;18절에서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닥쳐 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가21:36) 고 하셨던 것이다. 당시 말라기 예언자는 말로 ‘공의의 하느님이 어디있느냐’며 하느님을 원망하고, 불신하는 백성들의 심각한 죄는 그리스도의 심판을 견딜 수 없음을 가르치며, 회개를 촉구하였던 것이다.
2) 메시야의 오심의 목적은 죄인을 깨끗하게 하려하심이다.
⑴ “그는 대장간의 불길 같고” 라고 하였다. 오시는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는 금(金)을 제련하여 불순물 찌끼를 제하는 용광로의 불처럼 사역(使役)하신다는 것이다. 곧 자기백성들의 더러움과 불결한 것을 다 불살라 없애시는 분이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실 때에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직접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루가12:49) 라고까지 하셨다. 또한 구전(口傳)해 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를 가까이 하는 것은 불을 가까이하는 것이다”라는 말씀도 있다(익나티우스).
⑵“ 빨래터의 잿물 같으리라.”고 하였다. “잿물”은 빨래에 사용하는 비누를 말한다. 세탁할 때에 때를 제거하는 비누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보혈로 자기 백성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심으로 악인을 제하여 버리실 것을 뜻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⑶“ 레위 후손을 깨끗하게 만들리라.” 라고 하였다. 여기 “레위 후손”은 구약의 제사장들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제사장의 직무로 감당하는 일반 모든 성도(신자)를 뜻하는 말씀이다(1베드2:9).
① 어떻게 깨끗하게 하실 것인가?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 할 것이라고 하였다. “앉아서”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가 되어 보좌에 앉으신 엄위하신 분이심을 가리킨다(마태25:31 묵시20:11).
②“풀무질하여 은에서 쇠똥을 걸러 내듯”할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 앞에 서는 과정으로써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로이다. 성령과 불로 세례(마태3:11)를 주실 주님께서는 불같이 작용하는 성령을 통해서 회개(悔改)케 하고, 변화(變化)케 하여 자기백성을 정화(淨化)케 하시겠다는 것이다. 또한 큰 인내를 요(要)하는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정화케 하시겠다는 것이다.
⑷ 하느님께 온전한 제물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3절에서 “레위 후손은 순금이나 순은처럼 순수하게 되어 올바른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게 되리라.”했다. 여기 ‘올바른 제물’은 하느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이다. 이 제물은 하느님께 드림으로써 주의 제단을 더럽혔던 더러운 제물(말라1:7-8)을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으로 바치는 온전한 제물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약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예배를 뜻하는 것이다(로마12:1). 이러한 제물을 드릴 때에 하느님의 반응은 ①“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치는 제물이 옛날 그 한 처음처럼 나에게 기쁨이 되리라.(4절) ”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케 된 만 성도(聖徒)들이 하느님이 찾으시는 영적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릴 때 “기쁨” 곧 만족함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예배를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므로 존귀와 영광을 받으심이 된다는 것이다. ② “ 옛날 그 한 처음처럼 나에게 기쁨이 되리라” 는 것이다. 그때는 온전한 제사가 하느님게 드려지던 지난 시대를 말한다. 또한 옛말과 고대의 때, 경건한 선도(先徒)들이 드렸던 제사를 기쁘게 흠향하시던 모든 예배를 본을 삼아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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