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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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2-02-16 | 조회수1,871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22년 2월 16일 연중 제6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22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1980년대 초, 우리 집에 ‘APPLE II’라는 컴퓨터가 생겼습니다. 당시에 본체만 25만 원 했을 정도로 고가였는데, 제 바로 위 형님의 요청으로 부모님께서 사주신 것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컴퓨터였기에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무엇보다 오락실에 굳이 가지 않고, 집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고가의 게임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프린터 가격이 너무 비쌌기에 종이에 인쇄물을 출력할 수도 없었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고가의 게임기가 컴퓨터일까요? 아닙니다. 현대는 컴퓨터 없이 과연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중화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스마트폰은 손안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4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엄청나게 바뀐 세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봤던 공상 과학 만화책에 등장하는 미래의 모습이 대부분 실현되었고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이지만, 세상의 변화는 인간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바뀔 수 있을까요? 당연히 인간도 바뀝니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 안에서 제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힘들어도 바뀌어야만 합니다. 결국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변화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변화 안에서 늘 새롭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고쳐 주시기를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고 물으시지요. 병자를 고치는데 환부에 침을 바르는 것은 침이 치유 효과를 내는 약효를 가지는 것은 아니고 단지 당시의 민간요법 절차를 시행한 것뿐이었습니다. 이 행위는 소경이 마귀에 걸렸거나, 믿음이 없어서 소경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병을 죄의 결과로 생각했고, 마귀의 영향으로 단정을 지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생각의 변화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귀찮은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또 단 한 번의 방법으로 치유하지도 않으십니다. 3단계로 희미하게,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게, 마지막으로 똑똑히 환하게 보게 됩니다. 하느님이니까 쉽고 간단하게 한 방으로 치유해 줄 것 같지만, 점진적인 치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 역시 우리의 생각을 깨뜨려 버리는 것이지요. 다양하게 다가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왜 자신의 틀에 주님을 가두고 있을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올바르게 화를 내는 것은 화를 참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네. (아리스토텔레스). (눈 먼 이를 고쳐주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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