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3 사순 제2주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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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3-12 | 조회수91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셨다> -.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유프라테스강까지 이르는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신다고 하신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3,17―4,1 주해 17절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의 힘으로 사는만큼 신자들은 바오로를 본받아야 한다. 구원을 보장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안일한 태도를 피해야 한다. 18절 여기서도 3.2처럼 유다계 그리스도인 수구파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나 윤리적 자유를 주장하는 자들이라고 보는 주석자들도 있다. 19절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는 율법에 따라 음식을 가리는 것을 풍자한 듯하다. “자기네 수치”는 할례,즉 포경수술을 풍자한 것 같다(2-3절 참조) 20절 “시민권”을 “국적”이라 번역할 수도 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지상의 일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부활하여 천상에 계신 그리스도께 속한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들이다. 21절 “몸”은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인간 전체를 가리킨다. 장차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비천한 우리를 당신의 부활하신 모습처럼 변화시키실 것이라 한다. 복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주해 영광스러운 변모 루카는 마르 9,2-10을 옮겨쓰면서 많이 수정, 첨가,삭제했다. 28절 마르코는 “엿새 후에”(9.2)라 하는데 루카는 “이 말씀을 하신 뒤 여드레쯤 되어서”라 고쳤다. 28-29절에서는 마르 9.2에다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낱말을 덧붙여 예수께서는 “기도하러”산으로 올라가셨고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셨다고 한다. 루카는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수시로 부각시킨다. 31절 31-33ㄱ절은 루카가 덧붙인 가필이다. 31절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룩하실 일”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다. 루카는 그 구원사건들을 일컬어 “그분이 떠나 가실 일”이라 한다. 직역하면 “그분의 떠나심”인데 여시 “떠나심”은 기원전 1250년경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영도 아래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을 가리키는 낱말과 같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시나이로 옮겨간 것처럼 이제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당도하시면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세상에서 하느님께로 옮겨가실 것이다. 32절 제자들은 게쎄마니에서도 자고 있었다(22.45-46). 33절 천상의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에게서 떠나가려고 하자(33ㄱ절) 베드로는 그들을 지상에 붙잡아둘 요량으로 초막셋을 짓겠노라고 한다. 34절 마르 9.7에서는 구름이 제자들을 감싼 것 같다. 그러나 34ㄱ절에서는 구름이 모세와 엘리야을 감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구름이 감싼 이들은 “예수에게서 떠나가고”(33절) 또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34ㄴ절) 사람들과 같은데, 이 사람들은 분명히 모세와 엘리야이기 때문이다. 35절 마르 9.7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한다. 루카는 “사랑하는”을 “선택받은”으로 고쳐썼다. 하느님이 예수님을 소개하는 말씀은 세 가지 구약 대목을 혼합하여 세 가지 각도에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즉, “선택받은”은 이사42.1의 인용으로서 예수님은 야훼의 종이란 뜻이고, “내 아들”은 시편 2.7의 인용으로서 하느님의 유일무인한 아들이란 뜻이며,“그의 말을 들어라”는 신명 18.15의 인용으로서 예수님은 마지막 예언자이니 그에게 순종하라는 뜻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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