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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3주간 월요일 독서와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3-21 조회수1,174 추천수1 반대(0) 신고

 

우리는 살면서 사람과 서로 소통하기 위해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단순히 자기 주변 신변잡기와 같은 이야기부터 그야말로 다양한 이야기 주제도 있을 겁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내용을 신부님의 강론에서 듣게 된다면 거의 대부분 나아만 장군이 어떻게 해서 나병이 치유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아마 주를 이룰 것입니다. 그렇다면 치유 이야기에 앞서서 나아만 장수의 나병이 어떻게 해서 치유가 된 것인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분노를 삼키고 부하의 말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엘리사 예언자를 찾아갔는데 그가 나아만을 대하는 불손한 태도에 그만 화가 잔뜩 났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일어나는 분노를 참지 못해서 그자리에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더라면 나아만의 나병은 치유될 수 없었을 겁니다. 여기서 부하가 한 말도 중요하지만 그 말이 단순히 그냥 한번 시도해보는 수준에서 권유하는 수준의 말을 했다면 과연 나아만은 그 부하의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 수 있습니다. 부하가 한 말을 자세히 보면 화가 난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만큼 설득력 있는 내용으로 말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 것도 충분히 했을 텐데 지금 예언자가 말한 것은 그보다도 더 쉬운 일이라는 그런 뉘앙스를 전했던 것입니다. 물론 나아만은 화가 난 상태였지만 원래 화가 난 상태에서는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부하의 말에 엘리사 예언자의 말대로 순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을 지혜로운 말로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에서 우리는 하나 배워야 할 게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을 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세상 속에서도 빛과 소금이 되야 하겠지만 신앙 안에서도 빛과 소금이 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오늘 독서에 나오는 이런 상황은 아니지만 신앙생활 속에서 영적으로 지친 사람이나 아니면 하느님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혼란스런 사람도 때로 있을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말로 영적으로 잘 위로를 해주는가에 따라 그 영혼을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이 발길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나병이 치유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영적으로 힘든 사람에게 지혜로운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신앙생활 안에서 아주 훌륭한 영적인 자선이 되는 것입니다. 자선이라는 것은 물적인 자선만 자선이 아니라는 사실은 대 데레서 성녀께서 남기신 많은 영성서적을 보면 나옵니다.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성녀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사렙타 과부의 이야기와 독서에 나오는 나아만 장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복음은 이 두 이야기를 통해서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단순히 과부에게 파견된 이야기와 치유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뜻보다는 하느님의 구원의 문은 유대인에게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선민사상에서 나오는 자기 민족에게만 구원의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시면서도 하느님께서 생각하시는 구원의 대상은 이방인에게도 미친다는 사실을 언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사실도 단순히 그럴 것이라고만 생각할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렇다면 무엇을 시사하는지도 한번 잘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예전부터 항상 생각한 게 있습니다. 우리도 유대인이 생각하는 선민사상에 빠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걸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본다면 구원의 문제는 종교, 인종, 국가를 초월하는 성질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걸 인식하지 못하면 영적인 불감증에 자칫 빠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감증에 빠지게 되면 그걸로만 끝나는 게 아니고 자신의 영혼 구원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위험한 지경에까지 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런 사고에서 헤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건 누가 강요해서 될 게 아니고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입니다. 단순히 정통 교회인 천주교라는 신앙의 울타리가 완전한 구원의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우리는 영적인 불감증에 빠지지 않을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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