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2 사순 제3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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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3-21 | 조회수63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받아 주소서.> -. 아자르야는 주님의 자비를 거두지 말아 달라고 불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기도한다. 복음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해 몇 번이고 용서하라. 얼마나 자주 또 많이 죄를 지었든간에 무한정 용서하라는 말씀은 어록에서 따온 것이다.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이나 당신에게 돌아와서는 ”회개합니다“하거든 그를 용서하시오.”(루카 17.4)가 원형에 가까운 데 비해 마태오는 많이 손질하여 베드로와 예수님이 나누는 대화체로 엮었다. 그리고 용서의 끊없음을 더욱 강조했다. 무자비한 종 비유 18,23-35는 마태오복음만의 고유 자료다. 마태오는 자기 교회 구전에서 채집하여 여기 수록했다. 이는 일상 생활의 체험을 소재로 한 평범한 비유가 아니고 아주 특수한 사례를 다루는만큼 특례 비유다. 이 비유에는 마태오가 채록하면서 손질한 부분도 더러 있다. 23-24절의 “왕”. 24절의 “만 달란트”는 마태오의 개작일 개연성이 있고, 35절의 비유 풀이는 분명히 마태오의 가필이다. 비유의 뜻은 자명하다. 바야흐로 하느님의 선정이 시작되어 하느님은 무한 용서를 베푸신다. 그러니 하느님의 무한 용서를 받은 사람은 이웃의 작은 허물을 마땅히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 종을 불쌍히 여겨야 하지 않느냐?”(33절). 그러나 저 무자비한 종처럼 옹졸하기 짝이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이 특례 비유에서는 하느님의 가없는 자비와 용서, 인간의 숨막히는 비정과 협량이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 비유와 같은 사상이 하느님 모방 단절어에도 잘 드러난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지비로우신 것같이 여러분도 자비롭게 되시오”(루카 6.36).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의 선행을 앞지른다는 점에 유의하라. 24절 25절 이하에서 보다시피 비유 원형태에서는 “왕” 대신 “주인”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한 탈렌트는 6,000데나리온.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만큼, 한 탈렌트는 노동자가 안식일을 빼고 20여 년 일해야 벌 수 있는 거액이다. 그러니 만 탈렌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너무 큰 거액이다. 마태오는 탈렌트 비유에서도 병행문 미나 비유에 비해 금액을 터무니없이 많이 늘렸다. 35절 35절은 마태오가 특례 비유의 뜻을 밝혀 덧붙인 것이다. 우선, 35절이 없더라도 비유는 34절로써 잘 완결될 수 있다. 아울러, 마태오는 나름대로 비유를 풀이하기도 하고(5.16;18.14). 주기도문의 역점을 밝히기도 한다(6.14-15). 그렇지만 마태오가 18.35를 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말씀(6.15)을 참작하여 18.35를 형성, 첨가했다 하겠다. 남을 용서하면서 하느님의 용서를 비는 주기도문 조항도 유의하라(6.12).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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