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은 희미한 예감(豫感)이 아닌 지금 현실(現實)이다. (호세6,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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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2-03-27 | 조회수94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2년 3월 26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하느님은 희미한 예감(豫感)이 아닌 지금 현실(現實)이다. 독서(호세6,1-6) 1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못된 짓만 하는 자식(子息)을 매(枚)로 다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시다. 하느님은 자녀의 구원(救援)을 위해 육(肉)의 욕망(慾望)을 죽이셔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의(義), 사랑이시다.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 이틀 뒤, 사흘째 되는 날- 같은 사흗날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사흗날의 죽음과 부활(復活), 그 새 계약으로 살리신다는 말씀이다. 육(肉)의 욕망(慾望)이 죽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인(宗敎人)들도 다 하는 것이다. 코헬렛(전도서)에서 말씀 하셨듯이 ‘하늘아래 모든 것이 헛된 것’ 이기 때문에 자신을 다스려서 ‘새롭게, 새 것이 되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만 새로운, 새 것이 된다.’는 것이다.(2코린5,17)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구원(救援)이 있다는 말이다(요한14,6) (1요한5,19-20)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거짓, 헛된 것)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진리, 있음)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 정말로 아는가? 정말 믿어지는가?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구원의 약속(約束), 그 하느님의 말씀은 비처럼 내리는 어김없는 현실(現實)이다. (이사55,10-11)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 죄인(罪人)들의 구원(救援)을 당신의 말씀이 이루시고야 마시겠다는 것이다. 곧 말씀이 우리의 현실(現實)에서 활동(活動)하심으로(1데살2,13) 의지(意志)를 일으키시고 실천하게 하심으로다.(필리2,13 1코린12,56)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 북(北) 이스라엘, 남(南) 유다. 곧 모든 율법자(律法者)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아는, 믿는 신의(信義)가 없다는 말씀이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 율법자(律法者)들의 욕망(慾望), 그들의 죄를 드러내심으로(로마3,20) 그 죄의 삯인 죽음으로 넘어뜨리신 것이다.(창세2,17 3.6)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 이었고 심판(審判)의 정의(正義), 공의(公義)다. 빛이신 하느님 앞에 어둠인 죄(罪)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그 죄인(罪人)들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 그들의 죄(罪)값으로 외아들(獨生子) 예수님을 속죄(贖罪)제물, 곧 희생(犧牲)제물, 번제(燔祭)물로 보내셔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이신 것이다. 그렇게 제사(祭祀)가 온전히 ‘다 이루어졌다’ 그것을 믿는 것이 하느님을 믿는 신의(信義)며 하느님을 아는 예지(叡智)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信義)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叡智)다. = 제사를 열심히 드리는 그 ‘지혜롭다’ 하는 이들은 절대(絶對) 지킬 수 없는 신의(信義)며 알 수 없는 예지(叡智)다. 복음(루카18,9-14)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 율법(律法)의 제사(祭祀)와 계명(誡命)을 열심히 지킨 의로운 사람이다. 곧 교회(敎會) 안에 성실한 종교인의 모습이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용서(容恕), 구원(救援)은 죄(罪)에서부터 시작된다. 곧 자신이 죄인(짐승)일 뿐임을 아는, 그 낮은 자리에서 받는다.(코헬3,18 마태9,13 참조) (마태15,25-28) 25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 마귀(魔鬼)들린 아픈 딸을 둔 이방(異邦) 여자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자신이 개(짐승)임을 인정(認定)하는 여자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짐승들의 집에, ‘짐승의 먹이통’에 누워 ‘짐승들의 양식’으로 오신 구원자이다.(루가2,12) 곧 예수님께서 죄인(罪人)들의 죄(罪)로 죽으시고, 희생(犧牲) 제사를 완성(完成)하시고, 당신의 생명(生命)을 주시는 ‘그리스도’시다. 제사(祭祀)를 당신의 죽음으로 완성하신 구원자시다. 그러니 현세(現世)의 열심한 제사(祭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제사(祭祀)의 의미(意味), 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의(義), 자비(慈悲), 사랑을 ‘생명(生命)의 일용(日用)할 양식(糧食)’으로 먹고, 마시고, 입는 것. 그것이 의(義)로움 이다.(로마3,20-25 참조)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로마10,2-3) 2 나는 그들(율법자)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사랑)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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