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 사순 제5주간 월요일...독서,복음(주해) | |||
---|---|---|---|---|
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4-03 | 조회수1,02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5 그런데 그해에 어떤 두 원로가 백성 가운데에서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7 한낮에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수산나는 남편의 정원에 들어가 거닐곤 하였다.
15 그들이 알맞은 날을 엿보고 있을 때,
19 하녀들이 나가자마자 두 원로는 일어나서 수산나에게 달려가 20 말하였다. 22 수산나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23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 24 그러고 나서 수산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26 집에 있던 사람들이 정원에서 나는 고함 소리를 듣고, 27 원로들이 저희 쪽의 이야기를 하자 하인들은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였다. 28 다음 날, 수산나의 남편 요야킴의 집으로 백성이 모여들 때,
30 수산나는 부모와 자녀들과 모든 친척과 함께 나왔다.
36 그 두 원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단둘이서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39 그리고 둘이서 정을 통하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41 이 여자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하지 않았소. 이것이 우리의 증언이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46 그러자 다니엘이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 다니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딸인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은 바빌론의 원로 두 명이 거짓 증언을 한 것을 밝혀내어 수산나를 구해 준다. 예쁜 것도 죄입니까? 복음 <나는 세상의 빛이다> 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15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16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17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19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20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곁에서 하신 말씀이다. 주해 예수의 자기증언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예수와 믿지 않는 유다인들 사이의 논쟁이 12-59절까지 그 기조를 이룬다. 이 대목에서는 특히 바리사이들이 예수의 적수로 등장한다. 자기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계시한 예수의 말(12절)에 이어서 예수의 자기증언을 주제로 벌어진 논쟁이 언급되고(13-18절), 아버지와 일치된 예수 자신이 또한 계시된다(19-20절). 12절 “다시”는 7.37에 연결된는 듯하다. “생수의 원천”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한 예수의 말이 당시 관례와 상황에 연관되듯이, “세상의 빛”이란 예수의 자기계시 말씀도 성전 마당을 비추는 큰 등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금으로 된 네 개의 큰 등이 성전 마당을 둘러싼 담보다 높게 우뚝 세워져 있었고, 축제 때 켜진 이 등의 불빛은 온 예루살렘 시가지도 환희 내리비출 수 있었다. 예수의 이 계시 말씀은 당시 상황과 관련된 표현으로 본다면, 예수 자신은 온 예루살렘 시가지를 밝게 내리비추는 그 등불보다 막강한 “세상의 빛”, 곧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으로 계시한다. 즉, 유다인들의 시야를 뛰어넘는 표현이다. 예수는 온 인류에게 빛과 생명을 주기 위해 종말론적 빛으로서 이세상에 왔다. “말씀”은 “한 처음에” 이미 “사람들의 빛”이었고, 그 빛은 세상에 옴으로써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따라서 “세상의 빛”은 “세상을 위한 빛”이란 뜻으로서 종말론적 지상 계시활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이 표현이 당시 상황과 관련됨으로써 예수의 계시 말씀을 듣는자로 하여금 예수의 정체를 알아보고서 믿음의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하는 의미도 내포한다. 예수는 세상에 빛을 줄 뿐 아니라 예수 자신이 바로 빛이다. 예수는 자기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계시하고서, 이제 자기를 따라오도록 초대하고 또한 따라오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까지 한다. 이 말씀에는 세상이 “어둠”의 공간으로, 이 세상 인간이 길을 잃고 어둠 속에 방황하는 자로 전제되어 있다. 예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처지를 판단하도록 용기를 주고 동시에 세상의 빛인 자기를 믿고 따르도록 초대한다. “따라오다”란 말은 제자들의 소명사화에서 볼 수 있는 용어로서 계시자의 목소시를 믿음으로 듣고 따르며, 계시자에게 속한 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생명의 빛”은 죽음의 어둠과 대조되는 형상어로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 진실된 삶을 가능케 하는 신적 빛의 영역을 가리킨다. 즉, 죽음의 영역에서 사람들을 해방하는 생명으로서의 빛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의 실존은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에 이르는 밝은 실존이 된다. 13절 예수의 자기계시 말씀을 예수 자신에 대한 증언으로 문제삼아 이의를 제기한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증언은 입증할 수 있는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14절 예수의 증언은 여느 증인과는 달리 증인의 역할에서도 진실하고 동시에 법적 역할에서도 유효하다는 뜻이다. 예수의 증언이 자기 자신에 대한 증언인데도 “참된” 증언인 이유를 제시한다. 예수 자신만이 자신의 신원과 사명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증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분명히 아는 것만 거짓없이 증언하는 일이다. 따라서 예수만이 자신에 대해 알기 때문에 스스로 증언할 수 있고 그 증언은 참되다는 논리다. 예수가 하는 증언은 그 누구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의 계시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로서 자기증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계시 말씀은 듣지도 믿지도 않는 자들이란 뜻이다. 듣고 믿는 자만이 예수의 신원과 사명을 참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5절 원문에는 “육을 따라”인데, 내용상 의역했다. “육을 따라” 심판한다는 말은 “겉모양을 따라”심판한다는 표현보다 강한 편이다. “육”은 “영”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지상 인간실존을 드러낸다. 바리사이들은 “육적”이고 지상적인 기준에 따라서만 심판하며, 따라서 예수의 정체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예수를 믿지 않는 태도를 가리킨다. 예수 자신은 심판할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포기하고 하느님께 심판을 맡겨드린다는 뜻이다(50절). 16절 14절과 동일한 조건문으로서 예수가 심판한다는 실제적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15ㄴ 절을 의식하고서 반대로 언급할 뿐이다. 예수의 계시 말씀은 구원의 계시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된다. 그리고 예수의 심판은 진실하고 유효하다. 예수는 들은 대로 심판하고,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와 함께 심판의 말씀을 하시기 때문이다(16ㄴ 절). 예수를 파견한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와 결속되어 있고 예수의 말과 심판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신다는 뜻이다. 예수의 말이 신적 권위가 있음이 언급된다. 17절 “당신들의 율법”이란 말로써 예수와 바리사이들의 거리가 우선 시사되고,또한 유다인들이 생각한 증언의 유효성도 제시된다. 즉, 예수는 증언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관점에 따르면서도 자기 자신의 증언을 새롭게 재확인시키고자 한다(18절 참조). 18절 예수는 자기 자신과 자기를 파견한 아버지의 증언을 “두 사람의 증언”(17절)으로 내세운다. 이 두 증언은 예수의 자기증언에서 일치를 이룬다. 그러나 이것이 유다인들의 요구조건을 채우지는 못한다. 믿지 않는자에게는 납득될 수 없는 증언방식이기 때문이다. 19절 바리사이들은 예수의 아버지를 보지도 못하고 그 증언도 듣지 못했다는 뜻으로 제기된 질문이다. 이 질문은 그들의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 예수를 파견한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신랄하게 비난한 내용이다.(7.28;8.55 참조).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아들을 참으로 알게 된다면 하느님도 알게 된다는 그리스도론적 신관이 반영된 셈이다(14.6.9 참조). 20절 “영”과 “생명”으로 가득 찬 신적 계시 말씀들을 뜻한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예수가 자기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계시한 내용과 바리사이들에게 말한 내용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성전 마당에서 이루어진 예수의 계시 말씀임을 강조한다(마르 12.14;루카21.1 참조). “그분의 시간”은 성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때”를 가리킨다. 따라서 성부께서 허락하시는 그 “시간”이 예수에게 아직 활동을 계속해야 하는 “시간”에 있고 하느님이 예수와 함께하고 계심을 저자는 설명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거(祛)는 떨어 없앨 거자인데 보일 시(示)자와 잃다, 기다리다는 거(去)자로 이루어진 글자다. 그렇다면 담배 시거는 끊어야 말이 되는 것인가? 노가다판에서 쉬면서 담배를 피고 있으면 감독자가 뭐라하지 않는데 담배를 안피는 사람이 그대로 쉬고 있으면 “당신은 거기에서 뭐하고 있소? 어서 일하시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황사로 인해 고통을 겪는 우리가 황사의 근원지인 중국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황사가 누구네 흙입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