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9 사순 제5주간 토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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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4-08 | 조회수2,05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겠다.>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7,21ㄴ-28 -.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한 민족으로 만드시고,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시리라고 한다. 복음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주해 최고의회가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하다 라자로의 소생은 예수의 표징 가운데 최고봉인 반면, 최고의회가 예수를 죽이기로 공식 결의한 극단의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도된다. 이 결의는 물론 예수 수난사에 속한 전승이다. 그러나 이 대목의 기조를 이루면서 라자로 소생사화에 연결된다. 특히 최고의회의 토의 가운데 핵심내용인 가야파의 예언(49-50절)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반영한다. 예수가 에브라임으로 피신한 일(54절)과 예수에 대한 예루살렘의 긴장된 분위기(55-57절)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마지막으로 체류하게 될 운명을 예감케 한다. 45절 라자로의 소생을 통해 실제로 가지게 된 확고한 믿음을 뜻한다(48절;12.9.13.19 참조). 46절 바리사이들이 예수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도록 내맡긴 것을 뜻한다(7,25-26 참조). 또한 당시 바리사이들의 위치와 역할이 시사된다(47-48절;7.32 참조). 47절 최고의회는 대제관, 원로, 율법학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소집은 대제관의 권한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대제관들과 바리사이들”이 최고의회의 권한을 대표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이것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말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예수가 행한 기적들 자체에 대해서는 논박이 없다. “표징”은 저자의 의도에 따른 표현이다. 특히 “많은 표징들”이란 표현은 저자의 관심사와 무관하지 않다. 대제관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의 자기계시와 함께 믿음이 촉구된 수많은 표징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음을 뜻한다. 48절 “거룩한 곳”은 성전을 가리킨다. 예수의 활동을 저지하지 않으면 민중운동이 일어나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성전을 파괴하고 유다 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의 활동을 종교적이요 정치적 의미로 이해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를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위험한 인물로 여긴다(19.12 참조). 49절 가야파는 18-37년에 대제관으로 있었다. “그 해”란 예수가 “민족과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해 죽은 해를 가리킨다(51절;18,13-14 참조). 최고의회 의원들의 정치적 무지와 몰이해를 꾸짖는 표현으로서 가야파의 불손과 거만한 태도가 시사된다. 50절 최고의회 의원들의 정치적 무지와 몰이해를 꾸짖는 표현으로서 가야파의 불손과 거만한 태도가 시사된다. 최고의회 의원들로 하여금 고려해 보도록 제안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제안은 당시 정치적 상황에만 부응하려는 잔인하고 비양심적인 것으로서 간사하고 야비한 일종의 유혹이다. 따라서 세바나 요나의 경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일부 사본에는 “당신들에게”대신 “우리들에게”로 되어 있다. 51절 저자의 확신을 표현한 해설이다. 가야파는 대제관으로서 예언했을 뿐, 자기 나름대로 의도적으로 예언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마도 저자는 가야파로 “그 해 대제관” 즉 더 깊은 의미를 선포하기 위한 하느님의 도구로서 소개하고자 했으리라. 예수의 속죄 죽음을 뜻한다. 그러나 예수 죽음의 구원적 의미는 특히 세상에 생명을 주는 데 있다(6.33.51 참조). 52절 예수의 죽음이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온 민족을 위한 구원행위로서 보편적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즉, 예수의 속죄 죽음으로 인해 형성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 곧 “한 목자에 한 양떼”를 염두에 둔 그리스도교적 복음선포다. 이 내용은 현 문맥에서 가야파의 말(50절)과 유다 민족주의적 사상을 뒤엎는 예언으로 언급된다. 이런 맥락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교를 믿고 따르도록 불리고 선택된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양떼에 속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람들이 된다. 53절 최고의회에서는 결국 예수를 죽이기로 공식 결의했다고 요한복음은 확정적으로 보도한다. 공관복음에는 그 결의가 이미 전제된 것으로 보도된다(마르 14,1-2) 54절 “에브라임”은 최고의회에서는 북쪽 20키로미터쯤 떨어진 아랍인 마을 “엣 타이지베”(옛날에는 “아프라”로 불렀다)를 가리키는 듯하다. 예루살렘과 그 인근 분위기를 시사하는 상황묘사다. 55절 저자의 표현이다. 여기서는 예수의 마지막 해방절임에 역점을 둔 듯하다, 요한복음에는 해방절이 특히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대목에서 자주 언급된다. 남자들은 제관들의 뜰에 들어가 해방절 양을 잡기 위해 반드시 정결례를 지내야 했다(민수 9,6-13; 2역대 30,15-19 참조). 56절 “성전”은 성전 마당이나 주랑을 가리킨다. 예수와 관련된 당시 예루살렘 분위기 묘사다. 예수를 만날 기대감이 내포된 표현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보수주의가 보스주의는 아니며 차라리 엄마가 반짇고리 옆에서 바늘로 팬티를 보수할때가 진정한 보수주의가 아닐까? 또한 월급장이에게는 보수가 두둑하다면......
카야파 대사제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낫다며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했는데 오늘날에는 나 하나만 죽으면 다들 산다면 "내가 죽겠다"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한명이 죽어서 모두다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회개를 하여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 살아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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