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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6. 기도와 응답 / 시련과 기도[1] / 토빗기[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16 조회수1,464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 기도와 응답(토빗 3,1-17)

 

사실 토빗은 고향에서나 유배지에서나 늘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고, 야훼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충실히 지키면서 자선을 베풀고 의롭게만 살아왔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잔치 음식을 맛볼 겨를도 없이, 죽음을 당한 동포의 시체를 묻어주는 의로운 일마저 주위 눈치마저 아랑곳하지를 않고 솔선수범하는 일을 일삼았다. 그런 토빗에게 눈이 머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아내 안나는 그에게 자선으로 얻은 게 과연 뭐냐며 비아냥거렸다. 이에 토빗은 몹시 괴로워하며 울었다. 지나온 그 삶이 억울하기 까지 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는 이러한 고통과 탄식 속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을 잃지는 않았다.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의로우십니다. 당신이 하신 일은 모두 의롭고 당신의 길은 다 자비와 진리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이제 주님, 저를 기억하시고 저를 살펴주소서. 저의 죄로, 저와 제 조상들이 알지 못해서 저지른 잘못으로 저를 벌하지 마옵소서. 그들은 당신께 죄를 짓고 당신의 계명들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저희를 이렇게 약탈과 유배와 죽음에 넘기시고, 당신께서 저희를 흩으신 모든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와 조롱거리와 우셋거리로 이처럼 넘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죄를 다루실 적에 내리신 당신의 그 많은 판결들은, 정녕 다 참되십니다.”

 

사실 토빗기에서는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어서 소개될 라구엘의 불운한 딸 사라의 기도와 함께 이 기도들은 바로 하느님께 다다라서 그분께서는 이 탄원 기도에 직접 개입하시어 라파엘 천사를 개입시킴으로써 토빗과 사라의 탄원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리하여 토빗기의 전개를 흥미진진하게 진행시키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감흥을 돋우고 있다. 아무튼 토빗기에는 기도와 응답이 계속 반복되는 점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이렇게 그의 기도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재확인하고 백성이 과거와 현재에 지은 죄를 고백하는 유배 이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눈이 먼 그의 기도는 계속된다.

 

하느님, 저희는 당신 계명들을 지키지 않고 참되게 걷지도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당신께서 좋으실 대로 저를 다루시고 제 목숨을 앗아 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이 땅에서 벗어나 흙이 되게 하소서. 저에게는 마냥 이렇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그것은 제가 당치 않은 모욕의 말을 들어야 하고, 그로인해 제 슬픔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게 당신의 명령을 내리시어, 제가 이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제가 이곳에서 벗어나 당신 뜻에 따라 영원한 곳에 들게 하소서. 주님, 저에게서 당신 얼굴을 돌리지 마옵소서. 이렇게 살아서 많은 곤궁을 겪고 모욕의 말 듣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게 제게는 더 낫습니다.”

 

바로 그날 그 시각, 메디아의 엑바타나에 사는 라구엘의 불운한 딸 사라도 자기 아버지의 여종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아주 치명적인 모욕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일곱 남자에게 시집갔지만, 신부와 관련된 관습에 따라 신랑이 사라와 한 몸이 되기도 전에, 아스모대오스라는 악귀가 그 남편들을 매번 죽였다. 그래서 그 집 여종이 사라에게 일렀다. “남편들을 죽이는 자는 아무튼 바로 당신이에요. 지금까지 당신은 일곱 남자에게 시집갔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로부터도 당신은 이름도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신 남편들이 죽었으면 죽었지, 왜 우리를 이렇게 때리죠? 남편들께 따라가시지. 그래야만 우리가 당신의 아들딸들을, 영영 보지 않게 되는 거 아니에요?”

 

액바타나는 지금의 이란 이라크 일대인 메디아 지역의 큰 요새 성읍이다. 그리고 사라의 일곱 남편을 죽인 악귀인 아스모대오스는 구약에서 여기에만 나온다. 이것의 어원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멸망시키다를 뜻하는 히브리 말을 상기시킨다. 이로써 아스모대오스는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를 뜻하는 라파엘 천사와는 정반대되는 존재를 가리킨다. 이렇게 라파엘 천사와 아스모대오스 악귀는 외경과는 달리, 성경에서는 오직 이 토빗기에만 나오는 서로 대적하는 이다.

 

그날 사라는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 울면서 자기 아버지 집 위층 방으로 올라가 목을 매려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을 다시 가다듬고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사실 사라는 자살이라는 죽음을 생각하다가 마음을 바꾼다. 자살은 유다교에서는 본디 생소한 일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자살을 언급하는 것은 거의 한정적으로, 적이나(판관 9,54; 16,30) 배신자에게(2사무 17,23) 생명의 위협을 받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한정이 되어 있다. 아래 내용은 그녀의 푸념인 독백이다.

 

사람들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외동딸밖에는 없었는데, 그 애가 불행을 못 이겨 결국 목을 매고 말았구려.’ 하면서, 아버지를 모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만일 그렇게 되면 늙으신 아버지께서 이 못난 나 때문에 평생 슬퍼하시며 저승으로 내려가시게 되겠지. 그래서 목매는 것보다는, 평생 모욕의 말을 듣지 않도록 죽게 해 주십사고, 차라리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더더욱 낫겠다.” 그러면서 그녀는 창 쪽으로 앉아 양팔을 크게 벌리고 기도하였다.

 

자비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당신이 하신 이 모든 일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이제 저는 당신께 제 얼굴과 눈을 들어 올립니다. 분부를 내리시어 제가 이 땅에서 벗어나, 다시는 모욕의 말을 듣지 않게 하소서. 주님, 당신께서는 아십니다. 제가 남자에게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함을, 제가 이 유배의 땅에서 제 이름이나 제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힌 적이 없음을 말입니다. 저는 제 아버지에게 하나뿐인 자식입니다. 제 아버지에게는 대를 이을 다른 아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저를 아내로 맞아들일 가까운 친족도 일가붙이도 하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태 저는 남편을 일곱이나 이미 잃었습니다. 이제 제가 더 살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주님, 제 목숨을 거두는 것이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 저를 모욕하는 저 말이라도 들어 보소서.”

 

이렇게 사라의 기도가 끝나는 바로 그때에,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 눈먼 토빗의 탄원과 사라의 사연이 담긴 기도가 곧바로 다다랐다. 그래서 라파엘이 두 사람을 고쳐 주도록 파견되었다. 곧 토빗에게는 그의 눈에서 하얀 막을 벗겨 그 눈으로 하느님의 빛을 보게 해 주는 것이고, 라구엘의 딸 사라에게는 토빗의 아들 토비야의 아내가 되게 해 주고, 또 아스모대오스라는 악귀를 내쫓아 주는 것이었다.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하는 그 누구보다도 토비야가 사라를 차지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때에 토빗이 마당에서 집으로 들어가고, 라구엘의 딸 사라도 위층 방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이렇게 기도하는 두 사람은 고통을 당할 때에도 야훼 하느님 안에서 그 고통의 의미를 찾고, 하느님의 자비를 기다리는 참 신앙인의 모습을 드러낸다.[계속]

 

[참조] : 이어서 ‘7. 토빗의 유언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라구엘,사라,엑바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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