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1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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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4-20 | 조회수1,35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16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20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21 물론 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22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23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25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고,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주해 13절 본래 하느님 홀로 거룩하시다. 그런데 하느님과 밀착된 예수도 거룩하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7.52절에서는 예수 메시아를 의인이라 한다. 거룩하고 의로운 예수께 반대되는 인물은 “살인자인 사내” 바라빠다(루카23. 18.25). 14절 “생명의 창시자”는 “죽은 자들의 부활에 있어 첫째 분이 되시어 다른 이들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분이란 뜻이다. 창시자라는 존칭은 신약에 세 번 나온다. ”창시자와 구원자“, ”구원의 창시자“,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완성하신 예수“. 15절 치유이적사화를 보면 병자가 병을 고쳐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치유이적이 일어난다고 으레 말한다. ”그 이름에 대한 믿음“은 앉은뱅이가 예수께 의지하는 믿음이다. 그런데 앉은뱅이의 믿음이 예수 ”그분으로 말미암은 믿음“이라는 사실에도 유의해야한다. 그리스도 신앙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16절 17-26절에서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서라고 촉구한다. 이를 뒷받침하려고 구약성서르 길게 인용한다. “무지한 탓으로 예쑤께서는 한편 유다인들의 무지한 탓으로 죽임을 당하셨고 다른 한편 하느님의 구원 계획으로 돌아가셨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신론과 인간론의 양면 고찰은 베드로의 성령강림 설교에도 나온다. 19절 우리말 번역 ”회개하다“는 그리스어 메타노에오의 의역이다. “회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느님은 등진 인간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방향전환을 뜻한다. 일찍이 유다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랍비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돌아섬”의 참 뜻을 감명깊게 밝힌 바 있다. “회개하다”와 “돌아서다”가 함께 나오는 단락은 루카 17.3-4;사도 3.19; 26.18.20이다. “회개하다”와 “용서받다”라는 뜻의 동사가 함께 나오는 단락은 마르 1.4;루카 24.47‘사도 2.38;3.19;5.31;8.22’26.18이다. 20절 회개의 결과로 사람들이 지금 사죄를 받게 되며 장차 종말에는 서원한 시절이 올 것이요 예수께서 구원하러 오실 것이다. “시원한 안식의 시대”는 묵시문학에서 따온 소재로서, 비슷한 소재가 에즈라 4서 11.46;시리아의 바룩서 73.1-74.1에 나온다. 20ㄴ-21ㄱ절은 말라 3,23.24의 영향을 받았다. 곧 엘리야 예언자가 승천해서 하늘에 살고 있다가 역사의 종말인 야훼의 날을 앞두고 재림하여 민족 화해를 이루리라는 시대가 유다교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께서도 승천하여 하늘에 계시다가 재림하여 만물을 복원하리라는 기대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었다. 루카는 이런 종말 신앙 예수 재림 신앙을 수용했다. 그러나 종말 재림은 임박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종말이 도래하기 전에 예수 증인들이 “모든 민족에게”, “땅 끝에 이르기까지”예수 사건을 증언해야 하기 때문이다. 1.6에는 만물 복원 대신 이스라엘 국가 복원에 대한 기대가 있다. 22절 22절은 신명 18,15-16인용문으로서 장차 하느님이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보낼 터이니, 이스라엘 백성은 그 예언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문맥상 회개하는 일이 그 예언자의 말을 듣는 일이다. 23절 23절은 신명 18.10와 레위 23.29을 합한 혼합 인용문이다. 현재의 문맥상 그 뜻은 모세와 같은 예언자이신 예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하느님의 백성에 속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24절 예언자들이 모두 예고한 “이 날들”은 모세와 같은 예언자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현재다. 25절 “네 후손으로 말미암아 땅이 모든 족속이 축복받으리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곧, 하느님은 당신 종 예수를 부활시키고 세상에 파견하셨으며,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축복을 내리신다. 그 구원의 축복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중에는 세계만민에께 내릴 것이다. 복음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 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24,36-40는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는 인지 발현사화, 제자들을 교육하여 고난과 부활의 증인들로 삼으시는 사명 발현사화로 짜여 있다. 여기 인지 발현사화는 요한 20,19-20과 닮았다. 그런가 하면 여기 예루살렘에서의 사명 발현사화는 갈릴래아에서의 사명 발현사화와 “모든 민족”에게 전도하라는 명령이 닮았다. 루카가 마태 26.16-18의 원형과 비슷한 갈릴래아에서의 사명 발현사화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루카는 전승된 사화를 대폭 수정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든 루카의 사명 발현사화는 구구절절 루카 특유의 낱말과 문체와 사상으로 가득하다. 그가 애용한 낱말과 문체는 각각 지적하겠기에 여기서는 그가 강조한 사상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데로 예수께서는 고난을 겪고 부활하셨다는 선포문, 성령 약속, 제자들은 예수사건의 증인들, 모든 민족에게 죄사함을 위한 회개 선포. 36절 36ㄴ절은 파피루스 75호.시나이.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있으나 서방 사본군에는 없다. 같은 말씀이 요한의 인지 발현사화에도 있다. 39절 예수 발현을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곧 원혼이 출현한 것으로 곡해할세라, 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에서 , 루카는 인지 발현사화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육체성을 강조했다. 요한의 인지 발현사화에서도 육체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부활하신 분의 육체는 이승이 촉박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사도 바오로는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육체를 “영광스러운 몸”이라 했고 장차 부활할 신도들의 육체를 “영적 몸”이라 했다. 40절 40절 역시 파피루스 75호. 시나이.바티칸.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있으나 사본군에는 없다. 매우 비슷한 말이 요한의 인지 발현사화에도 있다. 41절 루카는 제자들의 못난 짓을 반영하는 습성이 있다. 제자들이 게쎄마니에서는 “근심한 나머지”잠들었다고 하더니 이제 여기서는 “기쁜 나머지”믿지 못했다고 한다. 42절 예수께서 생선을 잡수셨다는 것도 그분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으로 그 육체성을 또 한번 강조한 것이다. 루카는 베드로가 고르넬리오의 집에서 설교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한다. “우리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그분이 다시 살아나신 다음에 그분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44절 44-46절은 1고린 15,3-4의 선포문을 옮기다시피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할 만에 부활하시고 나타나셨습니다”. 루카는 앞에서도 예언과 성취 도식에 따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설렵했거니와 앞으로 사도들의 설교를 창작할 때도 그렇게 할 것이다. 44절의 “기록된 모든 것들”은 신약성서 중 갈라 3.10인용문을 제외하면 18.31; 21.22; 24.44; 사도 13.29; 24.14에만 나온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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