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2주일/ 서울주보) 상처는 결코 마지막이 아닙니다 / 정수용이냐시오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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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2-04-24 | 조회수1,39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생명의 말씀(2022년 4월 24일(다해)부활 제2주일/ 서울주보)
상처는 결코 마지막이 아닙니다
정수용이냐시오 신부 |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보도주간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했던 스승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것도 우리와 함께했던 동지 가운데서 배신자가 나왔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스승님을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이렇게 손쓸 겨를도 없이 일이 진행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순식간에 체포되셨고, 재판과 형 집행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율법을 잘 안다는 이유로 거들먹거리고 성전의 이권을 챙기며 떵떵거리고 사는데, 스승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끔찍한 십자가형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 제자들도 갑자기 겁을 먹었습니다. 이제 다음 차례로 우리까지 잡혀가는 것은 아닌지…. 언제 소환장이 날아오고, 조사를 받고, 고문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 스승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분명 지난 삼 년간 따라다니며 함께 지냈던 그 스승님이 분명합니다.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도 보여주십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너무나 반가웠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가슴에 가득했습니다.
마침 그날, 우리 동지 중 하나인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못 자국이 선명한 스승님이었다고 전해주었지만, 토마스는 우리가 주님을 뵈었다는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못 자국을 직접 보고 만져보아야 믿을 수 있겠다 합니다. 하긴, 다시 살아오신 스승님을 직접 보고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데, 그 자리에 없었던 토마스의 반응도 이해는 갑니다. 그 일이 있고 여드레 뒤, 우리는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들어 집안 문을 모두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스승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분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정한 눈빛으로 토마스에게도 다가가셨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토마스에게 당신의 못 자국을 보여주시고, 옆구리의 상처도 만지게 해주십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토마스도 눈물을 흘리며 스승님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분의 상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우리를 두렵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스승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만 빼고, 저 문밖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끝까지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율법 학자들과 사제들은 십자가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고, 우리에게 당신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 상처를 보고 만져보았지만, 이젠 무섭 지 않습니다. 상처는 십자가의 결과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잠갔던 저 문을 열고 얼른 나가야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을 것을 빨리 사람들에게 전해야겠습니다. 특별히, 지금 스승님처럼 상처 입은 사람들을 만나러 달려가야겠습니다. 그 상처가 끝이 아니라고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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