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2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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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6-11 | 조회수1,51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초기 교회 때부터 이어져 왔다. 삼위일체 대축일이 로마 전례력에 들어온 것은 14세기, 요한 22세 교황 때였다. 제1독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지혜는 태어났다.> 제2독서 <우리는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주해 의화는 다음과 같은 결실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평화를 누리면서 세말에 하느님의 현존에 결정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 희망은 우리를 현세의 고통과 불행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게 한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향한 사랑을 입증하고 당신 성령을 통해 이 사랑을 체험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힘으로 우리는 인간적 연약함과 죄를 이겨내고 그리스도의 죽음 덕분에 하느님과의 화해를 얻어 심판에서 구원받을 희망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고 그분의 중개로 하느님을 모신 것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1절 신앙에 의한 의화는 하느님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가져다준다. 평화는 죄인이 하느님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그분과의 화해를 토대로 죄와 진노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상황을 가리킨다. 2절 모든 사람들이 범죄 때문에 상실한 하느님의 영광은 세말의 축복으로서 그리스도의 중개로 다시 얻게 되었다. 유다인들은 자랑할 근거가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세말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현존 속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자랑한다. 5절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그리스도이들의 희망이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이유는 그분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에 있다. 성령이 그들의 마음속에 현존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고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복음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주해 12절 문맥상 “협조자”의 세상에 대한 역할과 제자들 가운데서의 활동을 연결하면서 설명한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더 말할 것이 무엇인지 추측할 필요는 없다. 예수의 계시가 오히려 성령에 의해 더욱 밝혀질 것이다. “지금은 강당할 수 없다”는 말은 아직 제자들이 체험하지 않은 상황. 즉 앞으로 있을 공동체의 상황을 암시한다. 그것은 예수의 말들이 구체적으로 이해되고 그 계씨가 현실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는 항상 열려 있는 미래다. “감당하다”는 표현은 더욱 무거운 짐을 시사한다. 가뜩이나 슬픈 제자들의 상황에 더욱 짐스럽다는 것도 뜻한다. 신앙공동체는 “세상”과의 대면 가운데 더욱 무거운 짐을 감당해야겠지만 “협조자”가 도와 세상 안의 실존 의미를 깨닫게 해줄 것이라는 뜻이 시사된 셈이다. 13절 “협조자”는 “진리의 영”으로서 제자들을 모든 진리 안에 인도하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협조자”의 원래 역할이다. “진리”는 예수가 이 세상에 계시한 진리, 곧 생명을 보장하고 약속한 계시를 가리킨다. “협조자”는 제자들을 이런 계시에 더 깊이 접하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이 역할은 “협조자”의 다른 역할에 비해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으로 인해 가장 강하게 부각되었을 것이고, 특히 요한 교회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의 복음에 관한 요한 교회의 영적해석도 정당하게 여겨졌으리라 본다. 예수가 지상 계씨자로서 자신을 파견하신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한 내용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 파견사상 맥락에서 “협조자”와 예수의 결속관계 즉 계시의 연속성을 시사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예수의 계시를 능가하거나 미래사건들을 드러내는 어떤 전혀 새로운 것을 알려준다는 뜻은 아니다. “협조자”는 계시된 내용을 설명해 줌으로써 제자들을 미래로 인도하고 또한 제자들이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밝혀주어 “진리”에 따라 살도록 해줄 따름이다. 14절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아버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협조자”는 예수의 신비를 계시하고 예수의 구원행위에 참여함으로써 즉 예수의 구원행위를 계속 수행함으로써 예수의 영광에 기여한다는 뜻이다. “내 것을 받아서”란 표현은 예수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말씀들을 제자들에게 주었고 그들은 그 말씀들을 받아들였다는 표현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즉, 예수의 계시가 강조되고, “협조자”가 예수의 것을 받아 활동한다는 언급으로 더욱 부각된다. 15절 내용상 17.10과 같다. 아버지께서 당신 계시를 위해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셨다는 뜻이다. “협조자”가 이 예수의 것을 받아 활동함으로써 모든 것이 예수에게 위탁된 사실을 드러낸다. 14-15절은 제사의 절대성과 충만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그리스도론적 관심이 기초를 이룬다. 이것은 예수가 아버지께서 맡기신 모든 일을 끝내어 아버지 당신을 영광스럽게 했다는 것과 맥락이 같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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