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3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기념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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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6-12 | 조회수1,14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안토니오 성인은 1195년 포르투갈 리스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를 거쳐 성 십자가 수도회에서 생활하다가 사제가 되었다. 성인은 모로코에서 최초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수사들의 유해가 포르투갈에 도착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아, 아프리카 선교의 꿈을 안고 수도회를 작은 형제회로 옮겼다. 선교사로 모로코에 파견되었다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탁월한 설교로 파도바의 많은 이를 주님께 이끌었다. 그러나 1231년 열병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다. 안토니오 성인은 이례적으로 선종한 이듬해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 의하여 성인의 반열에 들었다. 제1독서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3 그러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6 임금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실은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에게 8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인장으로 봉인하고, 11 그 성읍 사람들, 곧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은 14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 아합 임금은 아내 이제벨의 간계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밭을 차지한다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주해 38절 제5 대당명제: 보복하지 말라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출애 21.24; 레위 24.30: 신명 19.21)라는 동태복수법 명제를 예수께서는 폐기하고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시오”라는 반명제를 내세우신다. 여기 명제와 반명제를 합친 대당명제는 마태오의 가필이다. 그 까닭은 루카 6.29-30에서 보다시피 어록에는 대당명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당명제에 이어 나오는 구체적 사례들은 대체로 어록에서 눈여겨보면, 악한 자에게 맞서지 않는 정도가 아니고 그가 요구한 것보다 훨씬 더 들어준다. 악을 선으로 갚은 식이다. 구체적 사례들은 예수께서 본디 따로따로 발설하신 것인데, 아마도 어록작가가 한자리에 모았을 것이다. 병행문 루카 6.29ㄱ에서는 오른쪽 왼쪽 구별 없이 그냥 “당신한테 (한쪽)뺨을 치는 이에게는 다른쪽마저 내미시오”. 이렇게 사는 그리스도인이 있을까? 흥부가 형수에게 밥주걱으로 뺨을 얻어맞자 다른쪽 뺨마저 돌려댔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오히려 비그리스도인이 실천했다고나 할까. 40절 채권자가 소송을 제기해서 속옷을 가지려 하거든 겉옷마저 얹어주라는 말씀이다. “이웃에게서 겉옷을 담보로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극빈자보호법이 있어 법적으로는 겉옷을 빼앗을 수 없었다. 빈자의 겉옷은 밤에 이불 구실을 했다. 병행문 루카 6.30ㄴ에서는 채권자에게 속옷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고 강도에게 겉옷을 빼앗기는 상황을 전재한다. “당신의 겉옷을 빼앗은 이에게는 속옷마저 거절하지 마시오.” 41절 로마 군인이나 관리들이 짐꾼이나 길잡이로 부리려고 유다인들을 강제로 징발한 상황을 전재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키레네 사람 시몬을 보라(마르 15.21=마태 27.32=루카 23.26). 42절 청하는 사람은 물건을 청하고 꾸려는 사람은 돈을 꾸려는 것인가? 청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헤브론, 이집트 멤퍼스의 지긋지긋한 거지떼 같은 부류인가? 병행문 루카 6.30은 더욱 심각한 상황을 전제한다. “당신한테 청사는 모두에게 주고 당신 것들을 빼앗는 이한테서는 되찾지 마시오.” 이 말씀 후반부에서는 분명히 강도에게 강탈당한 경우를 말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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