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8 연중 제11주간 토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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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6-17 | 조회수1,63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23 그해가 끝나 갈 무렵,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올라왔다. 25 아람 군대는 요아스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고 물러갔다. -. 요아스 임금이 자기에게 충성을 바친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를 죽이자,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임금을 살해한다.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주해 주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상징어 역시 어록에서 옮겨썼다. 마몬은 아람어로 재물 또는 돈을 뜻한다. 큰 힘을 지닌 까닭에 배력 또는 금력이라 한다.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마력을 발휘하거나 역신으로 둔갑하여 인간을 온통 지배한다. 그러니 마몬은 섬길 상전이 아니고 부릴 종놈에 볼과하다. 마몬에게 압도될세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는 전적으로 포기하라고 명하셨고 일반 청중에게는 기꺼이 빈자를 도우라고 촉구하셨다. 걱정하지 말라. 음식과 의복 걱정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어록에서 따왔다. 예수께서 발설하셨을 법한 부분은 25-26. 28-3절이다. 대비논법을 구사하여, 음식과 의복을 걱정할 것 없다. 하느님의 나라를 찾도록 노력하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음식과 의복도 보태어 주신다고, 하느님의 섭리에 근거하여 제자들의 근심 걱정을 풀어 주셨다. 오늘날엔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귀담아들을 말씀이다. 자고로 하느님 일에 헌신하다가 굶주리고 헐벗어 죽은 성직자나 수도자는 없다. 27절은 이미 어록에도 들어 있던 말이기는 하나, 예수 친히 발설하셨다기보다는 어록 이전의 전승자나 어록작가 자신이 보탠 말이겠다. 걱정해 봐야 별 수 없으니 무사무려가 상책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지 않고 생활고에 시달려 체념한 듯한 처세술이다.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릴 수 있습니까?” 대신 “제 키를 50센티미터인들 늘일 수 있습니까”라 번역할 수도 있다. 25절 마태오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써 우리 단락을 앞 문맥과 연결시킨다. 앞 문맥 24절에서 논한 하느님 숭배나 마몬 숭배냐 하는 실존적 결단이 먹고 마시고 입는 일상사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26절 마태오에는 “하늘의 새들”. 루카 12/24에는 “까마귀들”. 28절 루카 12.27에서는 그냥 “백합꽃들”. 마태오에서는 “들의 백합꽃들”. 팔레스티나 들판에 우리네 백합꽃은 없다. 4~5월에 팔레스티나 들판에 활짝 피는 형형색색의 꽃들을 일컬어 백합꽃이라 했을 것이다. 33절 “그분의 의로움”은 분명히 마태오의 가필인데, 하느님의 뜻 실천을 가리킨다. 34절 34절은 금심 걱정으로 짓눌린 사람에게 무사무적의 처세술을 권장한다. 이 비판적 처세술은 27절의 비판적 처세술과 매우 닮았다. 예수께서 이 비판적 처세술을 발설하셨다기보다는 어록 이전 전승자, 어록작가, 또는 마태오가 내린 결론일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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