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4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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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6-23 | 조회수1,03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한국 천주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제1독서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14 좋은 풀밭에서 그들을 먹이고, -.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님께서 몸소 당신 양 떼를 먹이시고 그들을 누워 쉬게 하시리라고 한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주해 5절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 그들을 절망시키지 않는 이유는 그분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데 있다. 성령이 그들의 마음속에 현존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고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6절 본문에서는 “아직”이 “정해진 때에” 앞에 다시 나온다. 이러한 반복은 우리의 지속적 연약성을 강조한다. “불경한 자들”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흠숭하지 않고 의화하지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 7절 의인을 위해 죽을 사람이 거의 없다면 그리스도가 심지어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바치셨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강조한다. 은혜나 사랑을 베푸는 은인과 같은 착한 사람을 위해 생명을 바칠 사람의 수는 의인의 경우보다는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착한 사람뿐 아니라 하느님을 거절하는 자들을 위해도 당신 생명을 바치셨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무상의 선물임을 강조한다. 10절 하느님 아들의 속죄적 죽음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를 얻은 우리는 아들의 부활 생명에 참여할 것이다. 11절 2.3절 참조. 복음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주해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 비유 비유의 상황묘사는 루카의 가필. 사실 1-2절은 5,29-30을 옮기다시피 한 것이다. 또한 3절의 “그러자 ...함께 이야기하시다”.“이 비유를 말씀하시다” 역시 루카의 전형적 문제다. 이처럼 루카가 1-3절 전부를 형성. 첨가했지만, 그는 본디 예수께서 세 가지 비유를 발설하신 상황을 정확히 도로 밝혀 내었다! 4-7절과 마태 18,12-14를 비교하여 각각 편집요솔ㄹ 제시하고 나면 비유의 어록 원형을 복구시킬 수 있는데. 대충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는다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버려둔 체 잃은 것을 찾아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가 그것을 되찾게 되면 자기 어깨에 맵니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그는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것을 두고 더 기뻐 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늘에서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잃었다가 되찾은 이를 두고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그분은 세관원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곤 하셨다. 그 때마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그분의 처신을 비난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위의 비유를 답변하셨다. 그러니 일종의 자기변호인 셈이다. 아울러 예수님의 처신은 하느님의 처신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유의할 것이다. 6절 6절은 루카의 가필이리라. 그 까닭인즉 병행문 마태 18,12-14에는 6절이 없을뿐더러 루카의 애용어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공관복음 가운데 카애11.19를 제외하면 오지 루카복음에만 무려 열다섯 번이나 나온다. “이웃”은 신약성서 가운데 요한 9/8을 제외하면 루카 14.12: 15,6.9에만 나온다. “불러모으고”는 신약성서 가운데 마르 15.16을 제외하면 루카 9.1; 15.6.6; 21.13; 사도 5.21; 10.24; 28.17에 만 나온다. “함께 기뻐하다”는 네 복음서 가운데 루카 1.58: 15.6.9에만 나온다. 7절 7절은 대체로 루카가 어록에 수록된 마태 18.13을 옮겨쓰면서 명사 “회개”, 동사 “회개하다”를 덧붙인 것이다. 명사 “회개”는 네 복음서 가운데 마르 1.4: 마태오 8.8.11를 제외하면 오직 루카 3.3.7; 5.32; 15.7; 24.47에만 나온다. 특히 “회개가 필요없는 의인들”이란 문구의 낱말 하나하나는 루카 5.31-32에 다 나온다는 점에 유의할 것이다. 동사 “회개하다”는 마르코에 두 번. 마태오에 네 번 나오는 데 비하여 루카복음에 아홉 번., 사도행전에 다섯 번 나온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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