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0 연중 제13주간 목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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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6-29 | 조회수1,29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12 그런 뒤에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16 그러니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아모스를 비난하자, 아모스는 자신이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던 사람으로 주님께 붙잡혀 예언자가 되었다며 이스라엘의 멸망을 거듭 예고한다. 복음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주해 중풍병자를 낫게 하시다 마태오는 1절을 덧붙이고, 나머지 2-8절은 마르 2,1-12를 옮겨쓰면서 일체 부수적인 일화를 삭제하고 요점만 간추려 실었다. 예로, 가파르나움 집 문앞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일화(마르 2.,1-2), 네 사람이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뚫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다는 일화(마르 2.4)를 삭제했다.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작은 일을 보면 예수께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큰 일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5-6절). 여기에는 대비논법 비슷한 논리가 들어 있다(6,26.30; 7.11). 예수님은 생사에 말로써 죄를 사해 주신 적이 거의 없다. 매우 드물게 마태 9.2; 루카 7,48에서는 예수님이 사죄를 선언하셨다고 하나 이는 예외 현상이다. 오히려 예수께서도 사죄선언보다는 율법상 또는 윤리상의 죄인들과 서슴없이 가까이 지내고 식사하고 변호함으로써 그들을 거두어들이셨다. 말하자면 행동으로 사죄를 보여주셨다. 예수 부활 이후 교회는 사죄권을 행사했다. 9.8도 마태오 교회의 사죄권 행사를 강하게 암시한다. 이 때문에 유다교 율사들과 사죄 논쟁이 일어났다. 교회는 사죄권을 정당화하려고 중풍병자 치유이적 중간에다 사죄 논쟁을 삽입한 것 같다. 그리스도교 실존설학의 아버지 키에르케고르는 사죄 체험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하느님을 생각할 때 자신이 저지른 죄가 떠오르기보다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느낌이 들면,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얼마나 많이 범죄했는가보다는 얼마나 많이 용서받았는가 하는 느낌이 들면, 죄사함을 받고 안식을 누린다 하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전대사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전대사를 받고도 여전히 ‘나는 죄가 많아. 그런데 용서가 되겠어!’라고 하는 이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럴때면 지은 죄가 떠오르기보다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느낌이 들면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는가보다는 얼마나 용서받았는가 하는 느낌이 들면 죄사함을 받고 안식을 누린다하겠습니다. 지은 죄에 얽매이지 말고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전대사를 확실히 믿고 안식을 누려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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