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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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7-04 | 조회수55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김대건은 열여섯 살인 1836년 사제가 되고자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길을 떠났다. 1844년 부제품을 받은 그는 선교 사제의 입국을 돕고자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845년 8월 17일 상하이의 진자샹[金家巷]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고국에 돌아온 김대건 신부는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 사제의 입국 통로를 개척하려다가 1846년 6월에 체포되어 여러 차례 문초를 받고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년 5월 6일 서울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를 시성하면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정하상 바오로와 함께 한국의 대표 성인으로 삼았다. 제1독서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제2독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주해 의화의 결실 의화는 다음과 같은 결실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평화를 누리면서 세말에 하느님의 현존에 결정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 희망은 우리를 현세의 고통과 불행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게 한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향한 사랑을 입증하고 당신 성령을 통해 이 사랑을 체험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힘으로 우리는 인간적 연약함과 죄를 이겨내고 그리스도의 죽음 덕분에 하느님과의 화해를 얻어 심판에서 구원받을 희망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고 그분의 중개로 하느님을 모신 것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1절 신앙에 의한 의화는 하느님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가져다준다. 평화는 죄인이 하느님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그분과의 화해를 토대로 죄와 진노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상황을 가리킨다. 2절 모든 사람들이 범죄 때문에 상실한 하느님의 영광은 세말의 축복으로서 그리스도의 중개로 다시 얻게 되었다. 유다인들은 자랑할 근거가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세말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현존 속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자랑한다. 4절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의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이유는 그분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데 있다. 성령이 그들의 마음속에 현존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고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5절 본문에서는 “아직”이 “정해진 때에” 앞에 다시 나온다. 이러한 반복은 우리의 지속적 연약성을 강조한다. 복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주해 박해를 각오하라 17-25절에서는 박해상을 서술하는데, 이는 예수 생시에 제자들이 당한 박해이기보다 후대에 교회 전도사들과 신도들이 유다인들의 의회의 회당에서 겪은 박해요,로마제국 총족들과 로마제국 앞잡이 임금들에게서 당한 박해다. 17-22절은 대체로 마르 13,9-13에서 따왔다. 23절은 마태오에만 채록된 고유 요소다. 24-25절은 루카 6.40에도 있으나 어록에서 따왔다. 내용을 살펴보면 심한 박해도 받겠지만, 박해중에 네 가지 위로도 받는다는 것이다(19-20. 21. 22- 23. 24-25절). 17절 17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인들에게서 겪는 박해를 묘사한다. 50년경 유다지방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에게서 박해를 받았다는 기록이 1데살 2.24에 있다. 여기 “의회”는 회당의 유지 23명으로 구성된 지방의회를 뜻한다. 지방의회에서 유죄판결을 내리면 회당에서 매질을 했다. 법적으로 최고 40대까지 매질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30대까지만 때렸다. 사도 바오로는 유다인 회당에서 39대 매질을 다섯 번이나 맞았다.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의 총독들 또는 로마제국이 임명한 지방 임금들 앞에 끌려가 예수를 증거하는 것은 유다인들이 박해하거나 이방인들이 박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19절 그리스도인들이 붙잡혀 제판을 받게 될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미리 걱정할 것 없다. 성령이 일러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은 첫 번째 위안이다. 이는 본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구전된 단절어였다. 이 단절어는 두 갈래로 구전되어 오다가 그 중 하나는 어록에 수록되고 또 하나는 마르 13.11에 수록되었다. 마태오는 어록과 마르코를 혼합하여 10,19-20을 엮었다. 베드로(사도 4.8), 베드로와 사도들(6.32), 스테파노(7.55)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을 증거했다. 21절 묵시문학계에서는 비관적 사관을 지녀서 종말이 다가올수록 비극이 도를 더한다고 보았다. 일례로 사회조직이 무너진다. 사회조직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비극의 극치다. 22ㄱ절은 절망적 상태다. 마르 13.13ㄱ을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옮겨쓴 것이다. 마태오는 이 구절을 24,9ㄴ에서도 전재했는데 조금 고쳤다. “여러분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가지 참고 견디는 사람이야말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22ㄴ절)는 마르 13.13ㄴ을 고스란히 옮겨쓴 말씀으로서 19-20절에 이어 두 번째 위안이다. 여기서 “끝까지”는 종말까지를 뜻할 수도 있고 또는 “순교로 죽기까지”를 뜻할 수도 있겠다.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역시 종말 구원을 가리킬 수도 있겠고 또는 순교한 다음의 영생을 가리킬 수도 있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오늘은 기념일이라서 그런지 개신교 다니는 사람도 김대건 신부님 기념일이라고 하면 같이 기뻐해주기도 합니다. 예, 제 주위의 사람들은 종교가 달라도 그렇게 같이 기뻐해줍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눈을 들어 째려보거나 마치 시비를 걸듯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악의 세력이 자꾸 그러다 보니 괜한 내가 화가 날때도 있습니다, 기뻐하는 이가 있으면 미워하는 이도 있음을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것이죠. 하지만 난 김대건 성인님 기념일에는 무슨일에서나 기뻐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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