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는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루카10,25-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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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2-07-10 | 조회수97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2년 07월 10일 [연중 제15주일] “우리는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복음(루카10,25-37)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 성경(聖經) 전체, 율법 안에 들어있는(루가24,27) 구원의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한 율법교사의 질문이다.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 그렇게 못하면, 영원한 멸망, 죽음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마음, 목숨,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성경은 없다고 하신다.(로마3,9- 코헬7,20 시편14,1- 외 다수) 그리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느님도 이웃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 정신, 목숨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큰 계명에는 그 하느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곧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야할 존재라는 것이다. 그 하느님의 사랑을 담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나에게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을 주기 때문이다. *제사와 윤리, 그 율법의 자기 의(義)를 빼앗긴,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자신이 있으니 알려 달라’는 것이다. 율법교사라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해야할 이웃을 몰라서 묻는다? 질문 자체가 모순(矛盾)이다. 예수님을 시험(試驗)하려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빼앗기고)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 율법 자들은 모두가 도와주지 않았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제사를 드려야할 사제(司祭), 레위인은 피를 흘리는 사람을 만지면 부정(不淨)하게 되어 제사(祭祀)를 드릴 수 없기에 도와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율법의 의(義)의 한계이다. 곧 강도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같이, 율법(제사와 윤리)신앙 또한 영(靈)이 초주검이 된 것임을 비유하신 말씀이다. (요한10,7-8)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强盜)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보다 먼저 온, 곧 옛 계약, 그 율법(제사와 윤리)의 의인(義人)들이 강도(强盜)인 것이다. 왜? 율법으로는 죄(罪)를 알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로마3,20) 율법을 열심히 지킨, 그 행위의 의(義)는 죄(罪)를 해결(解決)할 수 없어(야고2,10) 하느님의 심판(審判)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로마10,1-3)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 가엾은 마음(스폴랑코 니조마임-慈悲), 자비의 마음은 주님ㅇ늬 마음을 뜻한다. 곧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했던 사람이며, 그만큼 예수님을 싫어했던 당신 자신을 사마리아인으로 비유하신 것이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 강도만나 초주검이 되지 않았다면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 유대인이다. 곧 우리에게 시련, 고통이 없었다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지 않았을 우리의 모습이다. 그것을 깨달아라 하심이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기름(성령), 포도주(피의 새 계약) 두 데나리온(구약과 신약), 여관(교회). 모두 성경(聖經) 전체에 들어있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眞理)를 모형(模型)한다. * 초주검이 된 사람을 비용을 들여 끝까지 돌보시어 살리시는, 곧 율법의 의로움이 살리지 못하는 주검(死)을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값으로 살리신 것이다.(에페1,7)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 율법교사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는 질문에 ‘누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냐?’로 바꿔 물으신다. 사랑할 대상에서 사랑 받아야할 대상으로 바꿔 물으신 것이다. 곧 하느님의 뜻인 구원자 주님을 깨닫지 못하고 시험하려 했던, ‘네가 사마리아인의 이웃으로 그의 도움을 받아야 될 강도만난 자야’ 하신 것이다. 사마리아인(그리스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 ‘강도(强盜)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이 사마리아인의 자비(慈悲)를 받았듯이 너도 가서 그렇게 그의 자비를 받아라’ 하신 것이다. 곧 ‘율법교사야, 너의 율법, 그 옛 계약의 너의 의(義)를 부인(否認)하고,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의(義), 자비(慈悲)를 받아 살아나라’하신 것이다.(로마3,20-24 히브10,8-11 참조) (1요한5,11)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영원한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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