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 연중 제18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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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8-01 | 조회수78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0,1-2.12-15.18-22 12 ─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15 어찌하여 네가 다쳤다고,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고 소리치느냐? 19 그들에게서 감사의 노래와 흥겨운 소리가 터져 나오리라. 21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 네 허물이 커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내가 야곱의 천막을 되돌려 주리라. 복음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34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주해 물 위를 걸으시다 14,22-23은 마르 6,45-52를 옮겨 쓴 것인데, 그 기회에 28,31-33절을 덧붙이고 마르 6,51ㄴ-52를 지워 버렸다.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의 변형태가 요한 6,16-21에 전해온다. 구조를 살펴보면 하느님이 모세 또는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와 흡사하다. 곧 하느님 시현사화 양식을 지니고 있다. 복음작가들은 이 양식을 본떠 그리스도 시현사화를 엮곤 했는데, 마태오복음의 경우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를 변모 이야기, 부활 후 여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 열한 제자에게 나타니신 이야기가 그리스도 시편 사화들이다. 23절 예수께서는 낮에는 사람들과 상종하고 밤에는 산으로 또는 외딴 곳으로 물러가 홀로 기도하신다. 24절 스타디온은 그리스식 길이 단위로 183~193미터. 25절 유다인들은 밤을 삼등분했고 로마인들은 사등분했다. 밤 시경은 새벽 세시부터 여섯 시까지다. 욥기 9.8에서는 하느님을 일커ㄹ어 “바다의 물결을 밟으시는 이”라 한다(시편 77.19 참조). 26절 인간이 하느님의 시현을 뵙게 되면 으레 겁을 먹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시현을 체험해도 무서워한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쑤님을 뵙고도 유령인 줄 여겼다(루가 24.37). 27절 “나요”는 일상적인 표현 같지만 실은 하느님이 당신 정체를 밝힐 때 그렇게 말씀하신다. 곧, 하느님의 자기소개 정식이다. 히브리 원전에서는 아니 후. 칠십인역에서는 에고 에이미라 한다. 그러니 27절의 “나요”에는 예수님이야말로 마치 하느님 같은 분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28절 마태오는 베드로 이야기를 삽입했다. 이 이야기는 본디 부활하신 예수께서 자신을 알리는 시현사화 속에 들어 있었을 법하다. 마태오가 거기서 베드로 이야기를 채집하여 여기에 수록함으로 말미암아, 27절의 “나요”는 “나 예수다”라는 식의 일상적 표현으로 그 뜻이 바뀌게 되었다. 30절 30-33절은 그 구조와 표현과 의미가 풍랑을 가라앉히신 기적과 매우 비슷하다. 베드로가 주님을 믿고 있는 동안에는 그분처럼 물위를 걸어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 의심하기 시작하자 그만 물에 빠지기 시작했다. 32절 마르 6,51ㄴ-52에선, 제자들이 정신 나갔다. 깨닫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이 완고했다고 한다. 마태오는 이를 고쳐 33절을 썼다. “절하다”동사는 마르코에 두 번, 루가에 세 번 나오는 데 비해 마태오에는 무려 열세 번 나온다. 예수님의 정체를 밝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베드로의 고백, 예수님의 임종을 기켜본 백부장의 고백도 그 내용이 같다. 겐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다 34-26절은 마태오가 마르 6,53-56집약문을 옮겨쓰면서 상당히 줄인 것이다. 예수 일행이 도착한 겐네사렛은 갈릴래아 수도 티베리아에서 예수님의 활동 근거지 가파르나움으로 가는 도중에 제법 넓고 비옥한 평원이다. 36절 마르 5.27에서는 예수님의 옷을 만졌다고 한다. 그러나 마태 9.20에서는 옷단에 달린 술을 만졌다 한다. 유다인들은 신명 22.12 민수 15,38-39의 규정에 따라 겉옷 옷단 네 곳에다 흰 실과 푸른 실로 꼬은 술을 달고 다녔다. 율법을 명심하라는 표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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