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2. 시몬의 활약 / 시몬 타싸[3] / 1마카베오기[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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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2-08-09 | 조회수56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시몬의 활약(1마카 13,43-53) 시몬이 데메트리오스와 동맹을 맺는 그 무렵, 그는 가자라를 향하여 진을 치고 그곳 둘레에 부대들을 배치하였다. 히브리 말 이름 게제르의 아람 말식 형태인 가자라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35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곳이다(9,52; 13,43; 15,28; 2마카 10,32 등 참조). 그는 중지를 모아 공격 기구를 만들어 성읍 가까이에 끌어다 놓고는, 탑 하나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그러자 공격 기구에 타고 있던 시몬의 군사들이 그 성읍으로 뛰어들자, 그곳에서 대단히 큰 소동이 일어났다. 온 성읍 주민들은 옷을 찢고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성벽 위로 올라가서, 큰 소리로 외치면서 시몬에게 화해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렇게 우리를 우리 악행에 따라 대하지 마시고 당신의 위대한 자비로 저희를 대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시몬은 그들과 합의한 다음에야 싸움을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성읍에서 쫓아내고, 우상들이 있던 집들을 정화한 다음,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또한 그는 성읍에서 이스라엘에 역행되는 온갖 부정한 것을 몰아내고, 단지 율법을 지키는 이들을 거기에 살게 하였으며, 그곳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 자기가 살 집을 그 안에다가 지었다. 이렇게 시몬은 가자라를 점령하였다. 시몬이 요나탄의 뒤를 이어 유다를 이끌 즈음, 예루살렘 성채에 있는 자들은 유다 지방을 오가면서 물건을 사고팔지 못하였기 때문에, 배가 몹시 고파서 많은 자들이 굶어 죽었다. 이 상황은 거의 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12,36 참조). 사실 요나탄은 여러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는 다마스쿠스에서 돌아와 유다 백성의 원로들을 모아 그들과 신중하게 논의한 다음, 유다에 요새들을 짓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더 높이 올렸다. 이는 성채와 도성 사이에 높은 벽을 세워 성채를 도성에서 갈라놓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로들과의 이런 회의는 일종의 백성 전체 모임의 일부를 이루는 이 회의이다. 당시에 예루살렘 ‘성채’는 계속 데메트리오스의 부하들이 장악하고 있었다(11,20 참조). 그리하여 요나탄은 성채를 고립시켜서, 이렇게 주둔군이 사고파는 일을 못 하게 하려는 시도로 추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시몬에게 화해해 달라고 부르짖자, 시몬은 그 청을 들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시몬은 그들을 그곳에서 쫓아낸 다음, 부정한 것을 치우고 성채를 정화하였다. 그리하여 백칠십일년 둘째 달 스무사흗날에 유다인들은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찬미를 드리고, 비파와 자바라와 수금에 맞추어 찬미가와 노래를 부르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기원전 141년 6월 4일이다. 이는 큰 적이 망하여 이스라엘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시몬은 해마다 이날을 기뻐하며 지내도록 결정하였다. 이날은 예루살렘에 26년 동안 주둔하던 셀레우코스 군대가 물러간 날이다. 그리고 성채 옆에 있는 성전 언덕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 거기에서 자기 군사들과 함께 살았다. 시몬은 자기 아들 요한이 어른이 된 것을 보고, 그를 모든 군대의 장수로 삼았다. 미래의 요한 히르카노스이다. 요한은 가자라에서 살았다. 이렇게 시몬은 예루살렘 성채를 점령하여 정화하였다. 백칠십이년에 데메트리오스 임금은 트리폰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은 다음, 도움을 얻으러 메디아로 갔다.[계속] [참조] : 이어서 ‘3. 시몬의 영광’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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