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8 연중 제20주간 목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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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8-17 | 조회수75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영을 넣어 주겠다.> 24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28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정결하게 하시어 새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넣어 주겠다고 하신다. 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주해 혼인잔치 비유 마태오복음에는 임금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푸는 비유가 있고, 루카복음에는 어떤 사람이 큰 만찬을 베푸는 비유가 있다. 그런데 마태오와 루카가 제각기 어록에서 옮겨썼다는 설도 있고, 제각기 고유 전승에서 채집하여 수록했다는 설도 있다. 랍비 문헌에도 비슷한 비유가 전해온다. 어쨌든 두 비유 밑바탕에는 예수 친히 발설하신 비유가 깔려 있다. 잘난 사람보다 못난 사람들을 주로 상종하신 예수께서 당신 처신을 변호코자 그런 비유를 발설하셨겠다. 마태오와 루카의 비유형태 가운데서 루카의 형태가 예수님의 발설에 더 가깝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루카의 비유 형태에도 전승 또는 편집 과정중에 첨가, 수정된 부분이 제법 있다. 마태오는 21,33-46에서처럼 일종의 구원사를 엮어 비유를 우화로 변질시키다시피 했다. 11-13절은 본디 1-10절과 상관없이 따로 마태오 교회에 전승한 비유였는데 마태오가 채집하여 이 자리에 배치했다는 설이 있다. 이와는 달리,마태오가 11-13절을 창작하여 첨가했다는 설도 있다. 14절은 묵시문학적 성격을 지닌 경구인데 마태오가 채록한 것이다. 에즈라 4서 8.3에 비슷한 경구가 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창조되었지만 적은 이들이 구원 받습니다”(에즈라 4서 8.41 참조). 마태오는 경구 같은 유행어를 단락 끝에 매어다는 습성이 있다. 2절 2절에는 임금, 임금의 혼인하는 아들, 잔치 등의 은유들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 미태오는 21.33-46에서처럼 짤막한 구원사 또는 비구원사를 엮었는데, 이런 관점에 따라 2-8절을 풀이하면 이렇다. 하느님이 구약시대엔 예언자들을, 신약시대엔 사도들을 보내어 구원을 알리셨지만,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배척하고 죽였다. 그래서 하느님은 66~70년 1차 독립전쟁때 로마 군인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살육하고 불살라 버렸다. 이스라엘은 불행히도 구원받을 자격을 상실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는 비극으로 끝난다. 9절 9-10절에서 하느님은 새로운 구원사를 시작하신다. 곧, 그리스도교 전도사들로 하여금 도시 성문들로 가서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 “악한 자들이건 선한 사람들이건 모두”교회로 모아들이도록 명하신다. 교회는 유다인과 이방인이 공존하는 혼성 공동체요, 종말에 이르기까지 악인과 선인이 공생하는 혼합 공동체다. 9-10절에서 가장 난해한 표현은 “길들의 시발점들”이다.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길들의 기점들을 가리킨다. 도시의 여러 성문에서 시골행 길들이 시작되는만큼 “길들의 시발점들”은 정확히 말해 “성문들”이다. 여러 민족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거래하고 잡담을 나누고 휴식하는 곳이 성문이다. 11절 교회는 별의별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속에는 진짜 그리스도인도 많고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도 많다. 역사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그러니 교회 성속이 뒤범벅이다. 거룩하고도 죄많은 교회다. 그러기에 교부들은 교회를 일컬어 성녀요 창녀라고 하지 않았던가. 마태오복음에 따라 혼례복의 우의적 의미를 따진다면, 혼례복은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행함, 아버지의 뜻을 행함, 의로움을 행함, 사랑의 이중계명을 행함, 자비를 행함을 뜻한다. 그렇게 행하는 이만이 참 그리스도인이다.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라. 거기서는 울고 이를 가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말씀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멸망선언이다. 같은 표현이 8.12; 13.42.50;24.51; 25.30에도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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