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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23 조회수1,013 추천수1 반대(0) 신고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갈릴래아 카나 출신이다. 필립보 사도가 인도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요한 1,45-51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를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와 터키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하였다.

 

 

 

 

 

 

 

1독서

<그 초석들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1,9-14
천사가 나에게 9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새 예루살렘

9.27절에서는 앞에서 잠시 언급된 새 예루살렘이라는 주제를 좀더 폭넓게 전개한다. 세분하여 일곱 가지로 묘사한다. 서언; 저자가 탈혼상태에서 높은 산으로 불려 올라감; 천상 도성의 장엄한 출현; 그 도성의 형태와 크기; 그 화려한 재료들; 하느님의 영광; 모든 민족 구원의 목적지; “생명의 책에 기록된 자들의 입장권; “새 예루살렘묘사는 17-18장의 바빌론 창녀묘사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바빌론 환시 때 저자는 광야로 이끌려갔지만, 새 예루살렘 환시 때는 크고 높은 산 위로 이끌려 간다. 광야는 더러운 영들과 교감하는 전통적 불모지이지만, 높은 산은 하느님과 만나는 상징적 지점으로서 시나이 산에서 시온 산까지 모든 위대한 성서적 산들을 함축한다.

 

10

거룩한 도성 묘사의 서두는 에제 40.2에서 유래한다.; “하느님이 나를 고국 이스라엘로 데려다가 높은 산에 내려놓으셨다. 그 위에 남쪽으로 성만한 건물이 있었다

 

11

찬란한 영광은 옛적 장막과 성전을 봉헌할 때처럼 초월적 존재의 현존을 나타낸다. 이어서 묘사되는 것들은 새 예루살렘의 완전함을 강조한다. 이 모든 소재는 재건된 예루살렘의 현시와 신현을 전하는 에제 40-48장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이러한 묘사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현실에 적용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본다.

 

거룩한 도성에서 나오는 빛이 4,3; 21.18.19에서처럼 벽옥에 비유된다. 구약성서에서 벽옥은 대사제의 가슴받이와 띠로 왕의 장식을 묘사할 때 거명된다. 성서에서 푸른색은 나뭇잎이나 풀들의 색이라는 점에서 활기찬 모습, 건강한 모습, 번영과 생명을 지칭한다.

 

12

천상 예루살렘은 세 요소, 곧 성벽과 주춧돌로 구성되어 있다. 이사 54.11-12의 영향일 것이다. “이제 나는 너의 돌들을 홍옥 위에 쌓아 올리고 청옥 위에 성의 주추를 놓으리라.. 루비로 요새의 뾰족탑을 만들고 수정으로 성문들을 만들며 성 둘레를 보석으로 쌓으리라.” 이처럼 자료들로 재작업하여 자신의 표현을 한다.

 

열두 성문은 천상 예루살렘에 재건된 옛 이스라엘의 상징이다. “열두 천사, 만약 상징적 형상이 아니라면, 이사 62.6에서 예루살렘아, 내가 너의 성 위에 보초들을 세운다한 것처럼 천상 예루살렘을 지키는 수효자들이며, 그 성의 거룩함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교회는 계약의 백성의 완성이다.

 

14

영광받은 새 이스라엘의 기초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다. 사도 바오로도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여러분은 나그네나 뜨내기가 아니라 성도들과 같은 시민이자 하느님 가족이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그리스도 예수를 모퉁잇돌로 하여 세워진 건물입니다(에페 2,19-20).

 

 

 

 

 

 

 

 

복음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45

41절과 거의 비슷한데 여기서는 다만 메시아대신 율법서와 예언서”. 곧 구약성서에 기록된 분이라고 지칭하고, “요셉의 아들로서 나자렛 출신 예수라는 구체적 소개를 덧붙인다. 나타나엘은 공관복음의 열두 제자명단에서 나오는 바르톨로메오와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46

예수가 나자렛 출신이란 이유로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말에 회의한다. , 나자렛 출신 예수가 메시아일 리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나자렛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드러나지 않은 촌락이었다. 구약성서나 랍비들의 문헌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은 곳이다.

 

필립보는 체념하지 않고 오히려 와서 보시오란 말로 나타나엘을 예수에게로 이끈다. 이 말은 예수가 세례자의 두 제자를 초대할 때 사용한 말과 동일한다., 아무튼 나타나엘도 예수를 만나보면 자기처럼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표현이다.

 

47

나타나엘은 예수에게 감으로써 예수에 대한 관심 또는 필립보의 증언에 대한 신뢰를 드러낸 셈이다. 예수가 아직 알지도 못하던 나타나엘에게 이 칭찬을 한 것은 신적 지식을 갖춘 예수상을 시사한다. 이런 예수상은 성부와의 밀접한 관계를 뜻한다. 예수는 자신의 임무와 을 잘 알 듯이, 제자들에 대해서도 잘 안다.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꿰뚫어볼 줄 안다. 이런 표현으로 저자는 예수의 메시아성을 시사한다. 예수가 나타나엘을 가리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명예로운 호칭이며,“거짓이 없구나라는 말은 칭찬이다. 나타나엘은 참된 이스라엘 사람”, 곧 하느님의 백성을 대표할 만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48

놀라 당황한 나머지 묻는 말이다.

 

예수는 랍비들의 표현방식을 빌려 나타나엘이 내적 근황까지도 말한다. ,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라는 말은 율사들이 흔히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율법서를 공부하면서 특히 메시아 대망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 여기서도 신적 지식을 갖춘 예수상이 더욱 심도있게 시사된다.

 

49

나타나엘은 사람의 마음속까지 꿰뚫어보는 신전 지식을 갖춘 예수에게 압도되어 예수의 메시아성을 고백한다. 예수를 존경하는 뜻에서 먼저 랍비라고 부르고 하느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고백한다. 이 두 칭호는 예수는 성서에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는 필립보의 말을 재확인하면서 예수의 메시아성을 드러낸다.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뜻하는 메시아적 칭호로서 마르타가 예수에게 고백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고백하는 그런 차원은 아직 아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느님의 왕권을 이스라엘에게 재건할 이스라엘의 왕은 하느님의 왕권을 이스라엘에서 재건할 메시아를 뜻한다. “하느님의 아들칭호와 함께 종교적 의미로 더욱 심화했고, 따라서 유다인들의 왕과는 다른 의미다.

 

50

예수는 나타나엘의 고백을 인정하고, 그가 지금 체험한 놀라운 일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는 약속까지 한다, “더 큰 일이란 예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계시적 말씀과 기적, 표징을 뜻할 것이다. 일단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예수는 더 큰 약속을 한다. 예수를 통해 일으켜진 믿음은 예수의 계속적 계시를 통해 가질 수 있고 또 실제로 커지며 더욱 확고해진다는 것이다.

 

51

예수의 자기계시가 나타나엘 개인에게 이루어진 것으로, 시사한 저자의 표현이다. 그러나 내용상 제자들 모두에게 말한 예수의 자기계시다, “보게 될 것입니다란 약속의 말인 50절과 이어져 있긴 하지만, 예수의 계시 말씀인 51절은 원래 독립적 토막말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예수의 계시 말씀 서두에 으레 언급되는 요한복음이 전형적인 표현양식이다. 계시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예수의 말씀을 계속 이끌거나 묻는 말에 예수의 대답을 강조하는 구실을 한다.

 

이 계시 말씀은 18절과 34절에서처럼 문맥상 절정에 이른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첫 번째로 언급되는 예수의 자기계시이자 증인이다. 예수에 대한 증언의 절정이 18절에서는 저자의 서술적으로 34절에서는 세례자의 입으로 언급되었다. 그리고 나타나엘에게 약속한 더 큰 일이 현 문맥상 하늘이 열려 있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를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으로 언급된다.

 

사람의 아들은 여기서 야곱의 천상 사다리표상에 따라 하느님의 계시 장소, 곧 하느님의 지상 현존 장소로만 소개된다. , “사람의 아들을 통해 하느님이 지상에 현존하신다는 점만 강조된다.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분으로는 아직 소개되지 않는다. 예수의 이 계시 말씀은 사람의 아들에 관한 첫 번째 계시 말씀이라고 할 수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결혼을 안해본 사람으로서 성적에너지는 정말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성적에너지가 충만할때면 성서를 붙들고 묵상을 하던가 매일미사의 독서와 복음을 읽고 묵상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날 것을 게시판에 올릴 준비를 합니다. 아무리 긴 독서와 복음이라도 힘이 들지 않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글을 묵상하고 옮기는데 거의 다 옮긴 상태에서 잘못하여 글이 다 날아가버렸습니다. 이럴 때 화가 나냐구요? 아니죠. 저는 다만 이런 다시 옮겨야 되겠네.’하면서 다시금 올립니다. 이러할때면 성적에너지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면서 사라집니다. 이렇게 저는 성적에너지를 쓰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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