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1 연중 제24주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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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9-10 | 조회수1,00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주님께서는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 주님께서는 수송아지 상을 만들어 제사 지내는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려시다가 모세의 애원을 들으시고 재앙을 거두신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16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주해 하느님의 자비로 복음을 선포한다 사목서간이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라면 여기서 말하는 바오로는 역사상 실제 바오로가 아니라, 오히려 필자가 전승을 통해 알게 된 관념상의 바오로다. 따라서 이 문단은 바오로의 전기와도 같다. 이 전기에 의하면 당시 교회는 바오로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회심하여 믿게 된 죄인들의 본보기로 공경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사목서간의 바오로 모습은 그의 유일무이한 사도직 권위에 역점을 두고 당대 교직자와 신도들의 모범으로 부각된다. 13절 바오로의 생애에는 뚜렷한 전환점이 있었다. 즉, 그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의 자비로 개종하고 사도직을 맡았다. 바오로 친서들에 비해 비그리스도적 과거를 더 준엄하게 비판하는 한편, 바오로의 “모독”을 무지에서 나온 것으로 변명한다. 역사상의 바오로 자신은 오히려 죄인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은혜를 강조했다. 실상 친서의 바오로는 유다교인으로서의 자기 과거를 불신앙이나 무지 또는 모독의 생활로는 보지 않았다. 그의 개종은 죄와 불경에서 벗어나는 전환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과거에 경건한 유다인으로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개종은 다만 유다교인의 처지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미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이상, 과거 유다인으로서 종사했던 가치는 필요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목서간의 필자는 바오로의 개종을 필자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개종의 전형적인 본보기로 보고 소개된다. 15절 “이 말씀은 확실하다”란 말이 어떤 중요한 주장을 하는 대목의 앞이나 뒤에서 구원에 관한 선언이나 신앙생활에 관한 일들을 강조한다. 이 표현을 보면, 사목서간이 집필된 시대의 교회가 전통적인 가르침을 근거로 교리나 실생활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은 확실하다”고 강조한 부분은 죄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고 썼을 때 루카 15.2;19.10의 말씀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 죄인들 중 첫째”라는 말은 죄가 가장 많았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를 박해하던 죄인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다. 17절 17절은 전례 때 외우던 영광송을 옮겨 쓴 것 같다. 하느님을 “모든 세기의 왕”이라고 한 것은 그분을 역사의 주재자로 고백하는 말이다. 복음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주해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 비유 비유의 상황묘사는 루카의 가필. 사실 1-2절은 5,29-20을 옮기다시피 한 것이다. 또한 3절의 “그러자 ...함께 이야기하시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다”역시 루카의 전형적인 문체다. 이처럼 루카가 1-3절 전부를 형성, 첨가했지만, 그는 본디 예수께서 세 가지 비유를 발설하신 상황을 정확히 도로 밝혀 내었다. 잃은 은전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 비유 이 비유도 앞의 비유처럼 본디부터 잃음과 찾음- 되찾음과 기쁨- 하느님의 기쁨 순으로 엮여 있었을 것이다. 6절 6절은 루카의 가필이리라. 그 까닭인즉 병행문 마태 18,12-14에는 6절이 없을뿐더러 루카의 애용어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공관복음 가운데 마태 11.19를 제외하면 오직 루카복음에만 무려 열다섯 번이나 나온다. “이웃”은 신약성서 가운데 요한 9.8을 제외하면 루카 14.12; 15,6.9에만 나온다. “불러모으고”는 신약성서 가운데 마르 15.16을 제외하면 루카 9.1; 15,6.9; 21.13; 사도 5.21; 10.24; 28.17에만 나온다. “함께 기뻐하다”는 네 복음서 가운데 루카 1.58;15,6.9에만 나온다. 7절 7절은 대체로 루카가 어록에 수록된 마태 18.13을 옮겨쓰면서 명사 “회개”, 동사 “회개하다”를 덧붙인 것이다. 명사 “회개”는 네 복음서 가운데 마르 1.4; 마태 3,8.11을 제외하면 오직 루카 3,3.8; 5.32; 15.7;24.47에만 나온다. 특히 “회개가 필요없는 의인들”이란 문구의 낱말 하나하나는 루카 5,31-32에 더 나온다는 점에 유의할 것이다. 동사 “회개하다”는 마르코에 두 번. 마태오에 네 번 나오는 데 비하여 루카복음에 아홉 번, 사도행전에 다섯 번 나온다. 9절 9절 전반부는 루카의 가필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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