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씀 안에 담겨진 하나를 찾는 것이 회개(悔改) (루카15,1-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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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2-09-12 | 조회수82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2년 09월 11일 [연중 제24주일] 말씀 안에 담겨진 하나를 찾는 것이 회개(悔改) 복음(루카15,1-32)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 자신들이 죄인(罪人)임을 아는 이들과 스스로 의인(義人)인줄 아는, 두 부류(部類)의 사람들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罪人)이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 광야(廣野), 물이 없어 물(말씀)을 먹을 수 없는 곳, 세상(世上)이다. 말씀을 도덕과 윤리로 보고 지켜 스스로 의롭다하며 말씀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 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을 깨닫지 못해 하늘의 의(義), 그 하나(한가지)를 먹지 못한 아흔아홉이다. (요한7,21참조) 그리고 ‘잃었다’는 것은 가지고 있었던 것을 잃었다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품(뜻)을 떠난 죄인을 찾을 때까지 뒤 쫒아 가 찾아내겠다는 구원의 약속(約束), ‘계약(契約)의 말씀’을 지금 쏟아 붇고 계신 것이다.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 양(羊)을 ‘어깨에 메고’, 곧 그의 죄(罪)를 어깨에 메고, 죄를 없애시고 의로움으로 데려오심이다. (요한1,29)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세상 죄를 ‘없애시는’- 깨끗하지 않으면, 의롭지 못하면 하느님 아버지의 함께 할 수 없음이다.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스스로)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죄인(罪人)임을 인정하는 이를 ‘하느님께서 찾아 데리고 오신 것을 회개(悔改)’라 하신다. 회개는 하느님께서 찾으심으로 시작하신다는 말씀인데, 찾아오심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안에 하느님의 찾으심, 부르심이 들어 있음이다. (야고1,2.12 참조)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 또 다른 비유(比喩)다. 은전(銀錢)은 예수님의 몸값, 곧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속전(贖錢)을 뜻한다.(마태26,1)하느님의 십계명(十誡命)을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보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새 계약을 깨닫지 못해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거저 얻는 하늘의 의(義), 그 하나, 한 가지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요한7,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하였을 뿐인데 너희는 모두 놀라워한다. = 주님의 한 가지 일을 찾을 때까지, 곧 십자가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契約)으로 나의 모든 죄(罪)가 씻겨 거저 하늘의 의로움이 됨을 깨달을 때까지, 성경 말씀에 머물러 등불이신 성령(聖靈)께 의탁(依託)하여 샅샅이 뒤져야한다. (적어도 매일미사의 독서(牘書)와 복음(福音)에 충실해야한다)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깨달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 하늘의 의(義), 그 하나를 깨달아 찾는 것,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회개(悔改)라는 것이다. 11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 스스로 의롭다하는 양(羊)과 죄인(罪人)인 양(羊)의 다른 비유(比喩)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 살아계신 아버지 앞에서 ‘유산을 달라’ 하니 당연히 죽을 죄인(罪人)이다. 당연히 크게 야단으로 가르치셔야한다. 그러나 그냥 유산을 주어 보내신다. 가르쳐 들어먹을 인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 아버지의 말씀을 자기 것, 곧 세상의 것을 위한, 자기 뜻을 위한, 사람의 말로 살았다는 것이며, 그 사람의 말로 사는 것은 구원(救援)의 무력(無力)함을 뜻하는 방종(放縱)한 생활이며, 아버지의 뜻, 새 생명(生命)의 말씀을 허비(虛費)한 것이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 세상 사람들에게는 구원(救援)의 양식(糧食)이 없음을, 그래서 줄 수가 없음을 뜻한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 아버지의 뜻(말씀)을 떠난 ‘세상의 삶이 돼지우리’ 삶이며 세상의 양식이 돼지, 짐승들의 먹이임을 깨달은 것이다. 곧 참 생명(生命)의 양식(糧食)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아버지께만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 세상의 힘(원리)으로 구축하려했던 자신(自信)을 버리는 자기(自己) 부인(否認)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자기 버림의 깨달음’을 위해 유산을 주어 보내셨던 것이다. 교육용 훈련장인 어둠인 광야(廣野), 세상(世上)으로... 빛, 생명의 나라, 아버지 하느님나라를 깨닫고 돌아오라고...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 아버지는, 아들이 세상(世上)적 자신을 버리고 부인(否認)해야 살 수 있음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매일 밤낮을 뜬 눈으로 기다리셨기에 멀리서 오는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안아주신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한 몸(하나)이 된 것이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 전형적인 자기 버림(부인)의 모습이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 다시 아들로 회복(回復)시키시는 무한(無限)한 사랑, 자비(慈悲)의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 먹고 즐기는 잔치, 미사(missa)의 본질이며 하느님의 뜻이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 종(奴)처럼, 아버지를 도덕(道德)과 윤리(倫理), 교리(敎理)로 열심히 섬겼다. 헛되이 섬긴 것이다.(마태15,6)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얻는 의(義), 그 한 가지를 깨달아 의로운 이로, 하느님의 아들로, 자유(自由), 안식(安息)을 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그러나 도덕(道德)과 윤리(倫理), 교리(敎理)를 참으로 알고 지키는 아흔아홉, 큰아들의 사람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도, 믿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한다. 그래서 ‘보십시오 저희들의 섬김이 옳지 않습니까? 저희들의 제사(祭祀)드림, 그 우리의 정성(精誠), 의(義)가 오른 것입니다.’ 우긴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 자신(自信)의 생각(뜻)을 고집(固執)하는 죄인(罪人)을 미워하지 않으시고, 포기(抛棄)하지 않으시고, 타이르심으로, 당신의 생명의 말씀을 계속 쏟아 부으신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 자신의 생각(뜻)을 죽이는 그 죽음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어제 공부했듯이, 이 세상은 쏟아 부어주시는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 힘의 원리인 세상 논리로 구축된 아를 버리는(부인),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얻는 하늘의 의(義), 그 ‘하나(한 가지)를 깨달아 그리스도의 지체로 한 몸이 되어 돌아오라’고 보내신 교육용 훈련장(訓鍊場)이다. 이 세상의 의(義), 재물(財物), 명예(名譽), 직분(職分) 등, 온갖 것을 짊어지고 오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다. ☨영원한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음에 지켜 하느님께 돌아 올 수 있도록, 이 세상의 것을 버리는, 부인하는 훈련을 잘 마치고, 통과할 수 있도록 늘 함께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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