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4 성 십자가 현양 축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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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9-13 | 조회수99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이다. 이 축일의 기원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의 노력으로 찾아내게 되었다. 황제는 이를 기념하고자 335년 무렵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 곁에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다. 그 뒤로 십자가 경배는 널리 전파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9월 14일로 이 축일이 고정되었다.
제1독서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 주님께서는 불평하는 백성에게 불 뱀을 보내 벌하셨지만,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게 하시어 뱀에 물린 사람들이 그것을 쳐다보면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주해 13절 “천상의 것”을 계시할 수 있는 자로서 “사람의 아들”이 언급된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취한 “길”. 곧 지상으로 내려와 머물다가 천상으로 올라가는 “길”도 간략히 시사된다. 즉, “사람의 아들”만이 천상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다. 14절 민수 21,4-9; 이사 52.13 참조. “들어올려지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을 가리킨다. 이 죽음이 모세의 구리뱀 사건과 비교된다. 그 비교점은 들어높이는 것, 구원의 힘, 감추어진 하느님의 뜻을 들 수 있다. 특히 “들어올려져야 합니다”에서 “...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을 강조한다. 15절 “사람의 아들”이 들어올려지는 목적은 믿는 이 모두 그 안에서 얻을 “영원한 생명”이다. 이제 “사람의 아들”은 인간 구원의 중개자로 언급된다. 특히 “그안에서”란 말이 이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인간 구원의 확실성은 하느님의 구원의지에 근거한다. “영원한 생명”은 요한복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고유한 개념으로서 인간 구원을 가리킨다.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언급된 “하느님의 나라”와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주로 종말론적 미래 의미로 언급된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현재적 의미에 역점을 둔 미래지향적 개념이다. 16절 인간 구원의 복음이 요약된 구절이다. “사람의 아들”이 십자가상 죽음을 거쳐 영광스럽게 되는 길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한마디로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연유된 것으로 선포된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생명”을 잃어버리고 하느님의 “진노”가 머문 인간세계를 가리킨다. 즉, 구원이 필요한 인간세계다. 바로 이 “세상”을 하느님은 사랑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이 사랑은 “외아들을 주심”으로써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주실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외아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났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유일무이한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이 무한한 사랑의 행위는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 “외아들”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이 “생명”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생명”이냐 “멸망”이냐, “구원”이냐 “심판이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음도 아울러 시사된다. “생명”이 현재적이듯이 “멸망”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오로지 “외아들”을 믿음으로써 이 비구원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17절 세상에 “아들”을 파견하신 하느님의 목적은 세상 구원에 있다. 이 목적은 또한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나타낸다. 하느님은 오로지 세상 구원만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불 뱀 즉 독사는 웅크리고 있다가 온혈 동물이 다가오면 물어서 독을 주입하여 죽여버립니다. 배가 고프던 안고프던 따뜻한 피가 흐르는 대상을 물어서 독을 주입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렁이는 독이 없는데 자기를 건들면 도망가려고 하고 움직일때는 아주 천천히 움직입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말입니다, 어렸을 때 소풍을 가려고 하면 비가 왔습니다, 우리들은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 구렁이를 죽여서 그런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구렁이가 나오면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구렁이가 집을 지켜준다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나오는 불 뱀과 구리로 만든 뱀에서 불 뱀에게 물리면 몸이 떨리면서 그대로 마비가 되어 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불 뱀이 독사인 것을 알지만 글자 그대로 사실적인 불 뱀이라기 보다는 비유를 들어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줄 때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이 오자 세례자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라며 몹시 나무랍니다. 독사의 자식들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구리뱀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저는 앞글에서 말했듯이 불 뱀에게 물려 십자가를 보고 기도하여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독사에게 물리면 정신은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이고 말투 또한 쉭쉭거립니다. 얼굴은 벌건하고 말입니다. 그러던것이 비로소 십자가를 바라보면 온화해지고 정신이 안정을 찾게되었습니다. 서서히 이성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죠. 술과 커피등 자극성이 강한 것은 가능한한 피해야 겠습니다. 추석명절 연휴도 다 끝났습니다. 건강하게 그리고 불 뱀에게 물리지 않도록 하시고 차근차근 생각을 하면서 지내셨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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