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8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독서,복음(주해) | |||
---|---|---|---|---|
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9-17 | 조회수60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몇몇 실학자들의 학문적 연구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선교사의 선교로 시작된 다른 나라들의 교회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사회는 전통을 중시하던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와 크게 충돌하였다. 결국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 등으로 천주교는 박해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신해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이에 따라 9월 26일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아직 시성되지 못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3,1-9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 지혜서의 저자는,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격지 않는다고 한다. 제2독서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38 나는 확신합니다. 주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 8,31-39에서는 교리적 부분에 결론을 내린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현세의 고난과 박해 가운데서도 또 어떠한 적대세력 앞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그분과 인격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느님은 그들을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드님까지 보내주고 편들어 주시며, 그리스도도 중개해 주신다.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덕분에 그들은 결정적 승리를 확신할 수 있다. 죄와 죽음과 죄의 지배를 받는 자아와 지상적 난관이나 우주의 부정적 세력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이 사랑이 그들의 삶을 결정한다. 32절 요한 3.16 참조.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 아드님까지 속죄의 희생으로 내어주신 하느님은 세말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34절 시편 110.1; 이사 63.10 참조. 히브 7,25; 9.24 참조. 35절 2고린 5,14-15; 갈라 2.20 참조. 36절 시편(LXX)43.23. 38절 1고린 4.9; 6.3; 11.30; 2고린 11.14; 12.7; 골로 2.18 참조. 1고린 15.24; 에페 6.12; 골로 2.15 참조. 에페 1.21 참조. 에페 1.21 참조. 1고린 15.24 참조. 39절 “높이나 깊이” 라는 말은 우주적 세력을 상징한다.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주해 어떻게 예수를 따라야 하는가? 이 단락은 네 가지 토막 말씀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단절어 집성문이다. 이는 마르 8,34-38을 옮겨쓴 것이다. 23절 마르 8,34에서는 “그 십가를 지고”라 한다. “그 십자가”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추종자 자신의 십자가를 가리키든간에 “ 그 십자가를 지고”는 박해 가운데서 순교를 각오하라는 뜻이리라. 그런데 루카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라 고쳐썼다. 이는 일상생활 가운데서 나날이 당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라는 명령이다. “날마다”는 루카의 애용어. 24절 마르 8,35에서는 “(나와) 복음 때문에”라 한다. 루카 복음에 “복음 전하다” 동사는 열 번이나 나오지만 “복음” 명사는 단 한 번도 없다. 25절 마르코에는 이 자리에 “사실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