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 토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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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09-30 | 조회수79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짧은 기간의 수도 생활이었지만 데레사 수녀는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면서 고행하였다.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였던 그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그리고 사제들, 특히 먼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성녀가 선종한 뒤에 나온 그의 병상 저서들은 세계 각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비오 11세 교황은 1925년 그를 시성하고, 1929년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성녀는 ‘소화(小花) 데레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1독서 욥기의 말씀입니다. 42,1-3.5-6.12-17 5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12 주님께서는 욥의 여생에 지난날보다 더 큰 복을 내리시어, -.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복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주해 제자들이 돌아오다 10,17-20은 루카 특수자료다. 17절은 루카의 가필이다. 루카는 열두 제자가 전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그들이 한 일을 죄다 그분께 아뢰었다”라고 한 바 있다(9.10ㄱ). 이를 본떠서 이제 70 또는 72 제자도 전도 결과를 예수께 보고한 것처럼 꾸몄다. 17절을 제외하면 예수님의 말씀만(16-20절)남는다. 언뜻 보기에 한 말씀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세 가지 단절어를 모아 놓았다(18,19/20절). 18절 하느님의 나라, 곧 하느님의 위력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나는 까닭에 사탄의 세력은 무너지고 만다. 같은 뜻의 말씀이 11.20(=마태 12.28)에도 있는데, 루카에 따라 인용하면 이렇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있으니 실로 하느님의 나라는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19절 바오로 사도가 독사에 물린 적이 있지만 무사했다는 이야기가 사도 28,3-6에 전해온다. 한편 마르 16.18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 열한 제자에게 “뱀을 집어들거나 ...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약속하셨다. 19절의 “원수의 모든 힘”은 사탄의 갖가지 마력을 뜻한다. 20절 구원받을 이들의 명단. 곧 생명의 책이 하늘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상이 구약성서, 묵시문학, 신약성서에 자주 나온다. 감사기도 – 계시 말씀 – 제자들의 행복 선언 이 단락은 감사 기도와 계시 말씀과 제자들의 행복 선언으로 짜여 있다. 이들은 본디 따로 전해오던 것을 어록 작가가 한자리에 모았을 것이다. 루카는 여기에 어록의 집성문을 다 옮겨썼으나 마태오는 감사기도와 계시의 말씀을 이 자리에 두고 제자들의 행복 선언만은 다른 곳으로 옮겨실었을 것이다(13.16-17). 21절 현재의 문맥에서는 제자들의 전도 결과보고를 받고 예수께서 감사기도를 드리셨다고 하나, 원래 감사기도는 단절어였으니 언제 이 기도를 바치셨는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흥겨워하시며”는 루카의 가필임에 틀림없다. 루카는 예수께 성령이 내렸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흥겹다”와 “흥겨움”은 루카의 애용어다. 21절은 공관복음에 전해오는 단 한 가지 예수님의 감사기도문이다. 예수님은 유식한 율사들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무식한 제자들이 이해하는 것을 두고 감사기도를 드리신다. 그러니까 율사들에게 배척을 받아 실패하신 순간에, 그래도 제자들에게만은 환영을 받아 작게나마 성공을 거두신 순간에 감사기도를 드리신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당신을 이해한 것은 성부의 계시 덕분이요, 또 그 계시는 “아버지의 선하신 뜻”덕분이라 하신 점에 유의하라. 22절 “아버지”와 “계시하다”라는 낱말이 21,22절에 다 있다. 이 때문에 어록작가는 두 단절어를 한자리에 모아놓았을 것이다. 22절은 계시에 관한 단절어로서 그 내용은 세 가지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조상들로부터 전승을 물려받은 데 반하여 예수님은 하느님에게서 모든 계시를 전해받았다.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아드님만이 서로서로를 안다. 오직 예수님에게서 계시를 받은 사람만이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 있다. 이 세 가지 내용은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론과 놀라울 만큼 똑같다. 23절 23-24절은 제자들의 행복 선언으로서,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적을 보기 때문에 복되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의 언행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룩되었던 것이다. 병행문 마태 13,16-17에는 다른 낱말이 더러 있다: “복되어라, 여러분의 눈은! 보고 있으니,(복되어라.) 여러분의 귀는! 듣고 있으니, 진실히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많은 예언자들과 의인들이 여러분이 보는 것을 보려고 갈망했으나 보지 못했고, 여러분이 듣는 것을 들으려고 갈망했으나 듣지 못했습니다.” 24절 바오로는 로마 16.25에서 “신비”가 오랜 세월 가려져왔음을 강조했다(1베드 1,11-12 참조).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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