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 연중 제27주간(군인주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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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0-01 | 조회수58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한국 교회는 1968년부터 군 사목에 종사하고 있는 군종 사제를 비롯하여 군인 성당,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물질적으로 돕고자 해마다 10월 첫 주일을 ‘군인 주일’로 지내고 있다. 오늘 전국 각 본당에서는 군의 복음화를 위한 특별 헌금을 봉헌한다. 제1독서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제2독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주해 6절 1디모 4.14에서는 디모테오가 장로들에게 안수를 받았다고 했다. 교직자가 안수를 받을 때 그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은사가 내린다. 교직자는 이 은사를 선물로 받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활용해 나가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7절 하느님이 주신 은사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이기 때문에 그런 은사를 받은 교직자는 어떤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비겁하게 행동해서는 안된다. 8절 “주님이 하신 증거”인지 혹은 “주님께 대한 증거”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분 때문에 갇혀 있는 나”라고 했으니, “주님의 증거”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동료와 “함께 고난을 나누지”않은 사람은 결국 그리스도의 수난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복음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주해 믿음의 힘 17,5-6ㄱ은 루카의 가필이다. 사실 루카는 제자들이 예수께 청하거나 질문했다는 말을 덧붙이는 습성이 있다. 또한 5절에는 “사도들”과 “더하다” 따위 루카의 애용어가 있는 점에 유의할 것이다. 루카는 평소에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만을 “사도들”로 간주했는데 그는 “사도들”이란 낱말을 두 번은 마르코에서 옮겨썼고 나머지 네 번은 스스로 도입했다. “더하다”동사는 네 복음서를 통틀어 마르 4.24; 마태 6,27.33을 제외하면 오직 루카복음에만 일곱 번 나온다.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다”는 공관복음 가운데 11.39; 17.6; 18,6에만 있다, 믿음은 위력을 발휘한다는 상징어는 어록과 마르 11,22-23에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루카 17.6이 어록을 충실히 반영하며 또한 어록이 마르 11,22-23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잘 보존한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뜻을 밝히기란 쉽지 않다. 상징어의 뜻인즉, 믿음은 그 뜻을 밝히기란 쉽지 않다. 상징어의 뜻인즉, 믿음은 전능하신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하찮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 아무리 하찮은 믿음이라도 엄청난 힘을 낸다는 말씀에는 이스라엘 특유의 또한 예수님다운 과장법이 들어 있다. 이와는 달리 풀이하는 설이 있으니, 즉 지금 하느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장차 역사의 종말에 엄청난 기적에 비하면 지금의 믿음은 제아무리 더 큰 믿음이란 할지라도 한낱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 지닌 믿음의 작음과 종말에 있을 기적의 큼을 대조하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종의 처지 비유 이 비유는 루카복음에만 수록되어 있는데 루카가 고유사료에서 채집했는지 또는 어록에서 옮겨썼는지 속단하기 어렵다. 자고로 품꾼은 보수를 요구할 수 있지만 종은 무상으로 일하는 법이다. 종이 들에서는 농사짓고 목축하는 일을 하고 집안에서는 부엌일을 한다 해서 보수나 사례를 바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 예수께서는 누구를 상대로 왜 이 비유를 드셨을까? 율사들뿐 아니라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바리사이들과 이스라엘 백성은 인과응보 사상에 젖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율법을 잘 지켜 공덕을 쌓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느님께 받겠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오해한 짓거리인데 예수께서는 그것을 종과 주인의 관계로 수정하셨다. 루카는 이 비유로써 사도들의 자세를 천명하고자 했다. 즉, 사도들이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했다 해서 보상을 계산하거나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도 1고린 9.16에서 같은 뜻의 말을 한다. “실상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내게 자랑거리는 못 됩니다. 그것은 내게 자랑거리는 못 됩니다. 그것은 내게 부과되는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불행합니다.” 7절 예수께서는 자주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가”라는 말로 비유를 시작하셨다. 이는 으레 강한 부정을 기대하는 “...하겠습니까?”. 아니면 강한 긍정을 기대하는 “... 하지 않겠습니까?”로 끝맺는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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