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8 화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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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0-17 | 조회수38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전승에 따르면, 루카 복음사가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 터키의 안타키아) 출신이다. 바오로 사도의 전교 여행에 함께하였던 그는 주님의 복음과 복음의 선포 상황을 기록하였다. 곧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이다. 루카는 다른 복음사가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부분을 성모 마리아와 함께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성모 마리아를 최초로 그린 화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그의 직업이 의사였다는 전승이 있는데, 예수님의 치유 기적들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1독서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14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해 10절 “데마스”는 골로 4.14와 필레 24절에 루카와 함께 등장한 바오로의 협조자이고,“크레스켄스”는 여기만 나온다. “디도”는 바오로의 협조자로서 실제로 달마디아,즉 오늘의 유고 남부지역에서 전도했다는 어떤 전승사료를 이용한 것 같다. 11절 “루카만이 나와 함께 있습니다”라는 말은 21절과 부합하지 않는다. 거기서는 많은 형제들의 안부를 전하고 있다. 루카를 충실한 사람으로, 또 마르코를 봉사하는 일에 귀한 사람으로 소개한 것은 아마 그들의 저작(복음서)을 추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봉사”란 항상 교직자의 직무를 뜻하는 말이다. 그것은 개인을 섬기는 일이 아니다(5.11절; 1디모1.12) 12절 “티키코스”는 사도 바오로의 친근한 관계가 있던 인물이다(사도20.4; 에페 6.21; 골로4.7). 13절 “카르포스”는 여기에만 나오는 인물이다. 유언을 전했고 곧 월계관을 받게 될 바오로에게 책과 양피지까지 필요했을까? 14절 “알렉산드로스”는 디모 1.20에도 나온 사람으로 당시 소문난 이단자였던 것 같다. 그가 트로이스에서 활약했는지 혹은 에페소에서(1디모 1.29 참조) 활약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14ㄴ절(시편 62.13 참조)은 저주하는 말이 아니고, 오히려 보복을 포기하는 말로 이해된다. 심판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16절 10-11절과는 다른 상황에서의 사도의 외로움을 다시 서술한다. 모두 복음 때문에 갇혀 있는 바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그를 저버렸던 것이다. 바오로가 로마에서 재판을 받을 때 로마교회가 그를 돌보아 주지 않았던 일에 대한 추억이 16절에 반영된 것 같다. 그렇지만 “첫번째 변론”에 간한 말은 분명치 않다. 바오로는 보복을 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박해를 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의 모범으로 부각된다. 17절 이 “구출”은 박해중에 주님이 바오로를 항상 보호하셨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도 있으나,18절을 참조하건데 구원을 뜻하는 것 같다.ᅟ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해 1절 1.17절의 제자 숫자가 사본에 따라 다르다. 시나이. 알렉산드리아, 루카 자신이 만들어 넣었는지를 밝히기는 쉽지 않다. “당신에 앞서”는 직역하면 “당신의 얼굴에 앞서”로서 이런 표현이 7.27; 9.52; 사도 13.24에도 나온다. 2절 2절과 같은 말씀이 마태 9,37-38에도 있다. 또한 그 변체가 요한 4,35에 나온다. 이 말씀은 본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발설하신 것으로 그 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원래 추수는 종말심판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그리고 종말 심판인 추수의 일꾼들은 본디 천사들을 뜻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지금이 추수할 때라고 하셨으니 지금이 종말이라는 것이요(현실적 종말론), 제자들을 추수 일꾼이라 하셨으니 그들이 곧 천사들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3절 마태 10.16에 변체가 있다: “이제 내가 여러분을 보내는 것은 마치 양들을 이리들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시오.” 마태 10.16ㄴ은 마태오복음에만 있는데, 이는 본디 10.16ㄱ(루카 10.3)과 상관없이 전해온 훈계였으리라. 짐작건대 마태오가 그것을 수용하여 10.16ㄱ에 덧붙였을 것이다. 루카 10.3 상징어의 뜻인즉, 세상을 제자들을 박해할 것이요, 그리고 세상에서 전도하는 제자들은 정당방위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4절 4ㄱ절은 여행 채비에 대한 훈시다. 마르 6,8-9에서는 지팡이와 샌들을 허락하시는데 어록에서는 그것들조차 금하신다. “길에서 아부에게도 인사하지 마시오”(4ㄴ절)라는 훈시는 여기에만 있다. 예수시대 근동인들은 인사할 때 두루두루 안부를 물으면서 여러 가지 소식을 주고받았다. 제자들은 이런 예의범절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곧장 전도하러 가라고 하신다. 5절 5-7절은 남의 가정에서의 처신에 관한 훈시로서, 그 병행문이 마태 10,12-13,10ㄴ에 있다. 그런가 하면 그 변체가 마르 6.10에 전해온다. 유다인들은 인사할 때 으레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상적 인사말을 넘어서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비는 축원이다. 6절 어느 누가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면 하느님은 그와 함께 계실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은 그에게서 떠나가실 것이라는 뜻이다. 7절 7ㄱ절의 변체가 마르 6.10에 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 머물러 있으시오.” 번체의 뜻인즉 처음 집을 불만스럽게 여긴 나머지 좀더 좋은 집을 찾아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7ㄷ절에도 같은 뜻의 말씀이 있다. “일꾼은 제 품삯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의 병행문이 마태 10.10ㄴ에 있다. 여기 7ㄴ절과 똑같은 말이 1디모 5.18에도 있다. 1고린 9.14에는 그와 비슷한 말이 있다. 8절 8-12절은 도시에서의 처신에 관한 훈시로서, 그 병행문이 마태 10,7-8,14-15에 있다. 9절 병행문 마태 10.7에서는 “하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루카 11.20(=마태12,28)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여러분에게 왔습니다”라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설교주제였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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