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2 연중 제29주간 토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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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0-21 | 조회수27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머리이신 그리스도 덕분에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주해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을 위한 은총들 14,1-6에서 교회일치의 신학적 근거를 먼저 제시한 저자는 7-16절에서 일치의 성격을 설명한다. 7-11절에서는 성서 인용과 해설을 하면서 현양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인 교회에 다양한 직무를 주셨음을 강조하고, 12-14절에서는 이 다양한 교회 내 직무의 공통의 임무를 한번은 적극적으로 한 번은 부정적으로 설명한다. 15-16절은 앞 내용의 요약이다. 7절 앞에서는 “여러분”이라고 불렀는데 여기 “우리”라는 호칭을 다시 쓰면서 수신자들과의 결속을 강조한다. 7-16절 단락의 첫 구절과 끝 구절에 나오는 “하나하나”라는 어구에 유의할 만하다:“우리 하나하나에게”, “각각 맡은 분량대로”, 이 표현은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도 다양성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이 “은총”은 1고린 12장; 로마 12장에서 말한 은사(카리스마)를 뜻한다. 8절 시편 68,19인용. 이 시편의 랍비적 성서해석법에 따라 단 두 가지 표현. 곧 “올라가셨다”와 “주셨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저자는 “예수의 승천”과 “영을 부으심”에 관한 예고를 본다. 시편 68.19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그분이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도다”가 아니라 반대로 “사람들에게서 예물을 받으셨나이다”로 되어 있다. 저자는 여기서 의심없이 시나이에 머문 모세에게 적용한 유다적 해석을 사용한다.; “당신은 하늘로 올라가서 ...토라를 받아 사람들에게 선사했도다”, 그리스도는 파스카 대관식 때 하늘로 올라가셨고, 토라를 주는 축제인 오순절에 영의 은사들을 선사하셨다. 9절 “땅의 낮은 (데)로; 지하 영역에 “죽은 이들의 나라”가 있다고 여겨졌는데, 1베드 3,19-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모든 하늘 위로”승천하기 전에 그곳으로 내려갔다. 다른 주석학자들은 이를 하늘에 비해 “낮은 때”라는 지상 영역들을 뜻한다고 본다. 일부 사본에서는 “먼져”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11절 “그분”은 곧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 “주셨다”는 8절에 인용된 시편의 “주셨다”를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사용된 단어다. 누구에게 “주셨는지” 명시되지 않았지만, 문맥상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주셨다”고 보아야겠다. 교회 내의 여러 직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무상의 선물”로 이해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12절 교회 내 직무, 특히 지도직의 목적은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섬기는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도록 준비시키는 데 있다. 에페소서에서 말하는 일치는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의 일치다. 교회의 일치는 은사와 직분의 다양성 속의 일치다. 교회의 일치는 은사와 직분의 다양성 가운데 존재한다. 그러나 다양성이 교회를 하나로 묶는 “평화의 끈”까지 끊어서는 안된다. 모든 은사는 아버지께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며, 모두가 교회의 선익을 위한 것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고 또 그 몸의 구성원 모두가 하느님이 바라시는 완성을 향해 성장하는 데 공헌한다. 13절 원문에서 이 13절은 “도달”의 목표점으로서 다음 세가지가 매번 같은 전치사와 함께 연속적으로 언급된다. “일치”,“완전한 사람”,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완숙한 경지”, 처음의 메크리(...할 때까지)와 세 번 반복되는 전치사 에이스(...으로, ...에로)가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에서 거쳐야 하는 성숙과정이 있음을 말해준다. 교회를 일으켜세우는 온갖 노력 가운데서 결코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점, 곧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그를 아는 일에서의 일치”다. 더러는 이 “완전한 사람”을 14절의 “어린아이”와 대조되는 표현으로서 단순히 “성년에 이른 사람”을 의미한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완전한 사람”이란 단순히 “완숙한” 경지에 다다른 개개 그리스도인이라기보다 종합적 의미로 완전한 사람인 “새 인간”, 새로 태어난 모든 이의 원형이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뜻한다고 본다. 여기서 “완숙”이라고 번역된 헤리키아는 본디 “나이”또는 “몸의 크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15절 “진리를 살며”로 번역된 알레테우에인은 신약성서에서 여기와 갈라 4.16에만 쓰이는데,“속임수와 간교로 꾸며진 가르침”에 대해 말하는 직전 문맥과 대조되는 “진리는 말하다”의 의미를 일차적으로 가진다. “사람 안에서 진리를 사는 것”이야말로 신앙인 공동성장의 밑바탕이다. 복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주해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13,1-5는 루카 특수자료, 상황묘사로 시작하며 말씀으로 끝맺는 까닭에 상황어 양식에 속한다. 1절 요세푸스 유다고사에 이와 비숫한 참변이 전해온다. 즉, 빌라도 총독은 35년 가리짐 산으로 제사 지내러 올라가던 사마리아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다는 것이다. 그처럼 빌라도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희생용 짐승을 몰고 가던 갈릴레아인들,또는 그 짐승을 바치던 갈릴래아인들을 무참히 살육했던 것이다. 2절 죄를 지으면 현세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고 바리사이들은 생각했다. 바꾸어 말하면 불행은 죄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들의 현세적 인과응보 사상이 요한 9.2-3에 잘 드러난다. 3절 회개하지 않으면 저 갈릴래아인들처럼 현세에서 멸망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현세적 상급을 약속하신 적도 없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현세적 징벌을 선언하신 적도 없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 종국적인 멸망, 곧 종말심판을 예고하셨다. 4절 “실로암”은 예루살렘 시내 동남부에 있는 저수장이다. 다윗이 점령하여 수도로 삼은 예루살렘에는 “기혼”이란 샘 하나만 있었다. 그 샘은 예루살렘 동쪽 성밖에, 곧 키드론 골짜기에 있는 까닭에, 시민들이 물을 길으러 다니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만일 적군이 샘을 점령하는 경우에는 식수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유다 임금 히즈키야는 땅굴을 뚫어 성밖의 기혼 샘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이고 실로암 저수장을 만들었다. “실로암에 있는 탑”은 아마도 실로암부근 성벽의 탑이었을 것이다. 6절 13,6ㄴ-9의 비유는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특수자료,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뜻한다. 그리고 열매 맺지 않는 나무를 잘라 버린다는 소재는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종말에 단죄의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으레 역점이 끝에 있는 법. 따라서 8-9절에 비유의 뜻이 잘 드러난다,“...금년만 그냥 두십시오 ...내년에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잘라 버리시지요.”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할 기회를 한 번 더 부친다. 그러니 지금 회개하지 않는다면 종말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 이것이 비유의 뜻이다. “비유를 말씀하시다”는 루카의 전형적인 문체. 따라서 루카가 이 비유를 이곳에 배치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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