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3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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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0-22 | 조회수38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제2독서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주해 9절 1고린 12.3 참조. 10절 직역하면 “의로움에(이르기 위해) 마음으로 믿어지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 입으로”. 11절 이사 28.16. 바오로는 이 예언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구원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12절 3,22-23,29 참조. 13절 요엘(LXX) 3,5. 15절 이사 52.7. 이 예언은 유다인들이 바빌로니아 유배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자에 관한 것이다. 바오로는 이 소식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적용한다. 16절 이사 (LXX) 53.1. 바오로는 유다인들이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은 전례를 제2이사야가 예언한 것으로 해석한다. 17절 1데살 2.13; 갈라 3,2.5 참조. 18절 직역하면 “오히려 그 반대로”, 유다인들이 그리스도에 관해 듣지 않았는가? 바오로는 그들이 들었다고 단언한다. 복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주해 갈릴래아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마태오복음은 갈릴래아 발현사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마태오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발현 전승,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시리아 교회의 전례 전승등을 참작하여 복음서의 대미를 장식했다. 갈릴래아에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신 발현사화의 특징은 기사는 짧고 말씀이 길다는 점이다. 따라서 말씀에 역점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이 밀착되어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부로부터 전권을 물려받았다. 그분은 세상 종말에서 언제고 교회와 함께 계시다. 그 옛날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셨듯이,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새 백성인 교회와 함께 계시다. 그러니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만민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침으로써 만민을 제자로 삼으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명하신다. 이는 교회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라는 명령이다. 16절 전에 갈릴래아 이스라엘 전도를 시작하셨던 예수께서 이제 같은 땅에서 제자들을 시켜 세계 만민을 상대로 한 전도를 시작하신다. 만민 중에는 이스라엘 백성도 들어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 절대다수는 예수님의 전도도 교회 사도들의 전도도 배척한 까닭에, 마태오복음 집필 무렵의 교회는 이스라엘 전도를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니 만민을 상대로 한 전도는 주로 이방인들을 향한 전도였다. 유다지방과는 달리 갈릴래아 지방에는 이방인이 많았다. 그러기에 “이방인들의 갈릴래아”라 하지 않았던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가신 것은 이방인 전도를 의도하신다는 상징행위다. 구체적으로 어느 산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 마태오의 경우 산은 계시가 내리는 곳, 곳, 즉 상징적 장소다. 17절 “절하다”동사는 마르코에 두 번 루카에 세 번 나오는 데 비해, 마태오에는 무려 열세 번 나온다. 예수 부활애 대해 의심을 품은 기타 사례로서는 루카 24,37-38; 요한 20,24-27이 있다. 18절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세분하면 전권선언,전도명령, 현존약속. 예수께서는 평소에도 권능을 지니고서 가르치고, 죄를 사하고, 병을 고쳐주셨다. 그런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았으니 우주적 통치권을 물려받으셨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라”했으니 온 누리에 대해 통치권을 행사하신다. 종말 심판에 앞서 이미 부활 순간부터 저 무한한 전권을 행사하신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인자가 전능(하신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26.64). 19절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전권을 행사하여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이는 전도에서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라시는 명령이다.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는 구체적 방편은 두 가지이니, 곧 세례 수여와 계명 준수 교육이다. 우선 세례를 베풀어 교회 공동체를 건설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교회는 시리아 교회였다. 그 전거로 시리아 교회에서 100년경에 쓰인 디다케 7,1-3을 들겠다: “침례에 관해서, 여러분은 이렇게 침례를 베푸시오. 이것들을 죄다 미리 말하고 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살아 있는 물에 침례하시오. 살아 있는 물을 구하지 못하거든 다른 물에 침례하시오. 찬물에 침례할 수 없으면 더운 물에 침례하시오. 두 가지 다 구하지 못하거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머리에 세 번 물을 부으시오.” 마태 28,19ㄴ; 디다케 7,1-3에만 이른바 삼위일체 세례정식이 있다. 그 이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20절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둘째 방편은 예수께서 평소에 명하신 것을 다 지키도록 모든 민족을 가르치는 일이다. 세례를 받은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익혀야만, 특히 산상설교와 공동체설교에 실린 윤리적 지침들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참 제자들이 되어 참 교회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맨 마지막으로 “보시오, 나는 세상 종말까지 어느 날이나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라고 하신다. 현존 약속이다. 교회 공동체를 돕고자 늘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이다. 그 옛날 야훼께서 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면서 선민을 돌보셨듯이,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도 하느님의 새 백성인 교회와 늘 함께 계시면서 교회를 돌보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교회 공동체는 현존하시는 주 그리스도께 의탁하면서 안심하고 종말을 향해 머나먼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다. 그 어떤 어둠의 세력도 교회의 명을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베드로입니다. 나는 이 바위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데, 명계의 문들도 그것을 내리누르지 못할 것입니다“)16.18).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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