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5 연중 제30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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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0-24 | 조회수46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둘이 한 몸을 이룸은 큰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25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28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30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주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들- 남편과 아내 5.21-6.9는 당시 세계의 가족관계 훈화들을 모아놓은 이른바 “가훈목록”이다. 골로 3.18-4.1과 비교해 볼 때 양쪽이 같은 순서를 따르지만, 에페소서의 가훈목록이 훨씬 길며 골로사이서의 내용을 확장했다는 느낌을 준다. 아내와 남편,자녀와 어버이, 종과 주인, 가훈목록에서는 “새로운 인간”의 새로운 인간관계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21절 이 구절은 가훈목록 전체의 제목인 셈이다. 가훈목록 내용은 신약성서 시대 유다계 그리스 세계에서 통용되던 법제와 대부분 동일하지만, 그리스도교 고유의 참신함은 종교적 동기를 강조하는 “주님을 대하듯”과 이와 유사한 표현들에 잘 나타난다. 당대 가족구조와 사회구조에 따라 “위계질서”의 원칙에서 출발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랑의 구원행위를 행동 근거로 삼으면서 일반사회적 종속관계가 상호관용과 봉사관계로 변모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표현들: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 관한 훈화에서 자주 반복되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하시듯이...”; “그리스도를 대하듯이...주인들에게 복종하시오” ; “주인 여러분, 여러분도 이와 같이 그들을 대해 주시오....여러분도 같은 주님을 하늘에 모시고 있다는 것과, 사람 차별을 하는 일이 그분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아 두시오”(6.9 참조;골로 4.1). 21절 22-32절에서는 혼인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에 비유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혼인생활에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듯이 그리스도도 교회를 당신 몸처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남편이라 불릴 수 있다. 이 표상은 이미 구약성서에서 준비되었다.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부부관계에 비유되곤 한다. 에페소서에서 말하는 아내의 남편에 대한 순종은 무조건 순종이 아니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자기헌신적 사랑을 기준으로 삼는 남편의 사랑과 부부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 순종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께 속하듯이, 부부는 혼인을 통해 “한 몸이 되어” 서로 종속되어 있다. 25절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아내들에 대한 바로 앞 단락의 권고는 반드시 25-절 단락에서 이어 말하는 남편들에 대한 권고와 함께 알아들어야 한다. 남편에 대한 훈계가 아내에 대한 훈계보다 훨씬 길며, 그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까지 내어주면서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원문에서 25절에 나오는 “그리스도께서도 교회를 사랑하시어”라는 문장은 26-27절에 연달아 세 개의 목적문으로 이어지는데, 이 셋이 모두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큰 사랑과 정성으로 교회를 위하시는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28절에 “이렇게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라는 권고가 이어진다. 여기서 “이렇게”는 앞 문장들에서 묘사된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26절 2절에서처럼 25절에서도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말하는데, 다른 점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상으로 교회 자체가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2절과 25절의 연관성을 고려해 보면 여기서 교회는 예수님 지상생활 때의 제자 집단만이 아니라 후대의 신앙인들도 포괄한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은 역사상 십자가 위의 죽음 때에 한정되지 않는다. 후대의 신앙인들도 “세례를 통한 정화와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그분의 사랑을 계속 받는다. 25절에 말한 그리스도 자기헌신의 목적을 밝히는 26-27절 세 개 목적절의 요점은 “정화와 성화”다. 교회의 정화와 성화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세례를 통해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이 정화와 성화에 참여한다. 정화와 성화는 세례를 암시하는 1고린 6.11에도 나란히 나온다. 27절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화하고 정화한, 맑고 환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 3,26-27은 목욕, 단장한 신부가 신랑에게 인도되는 고대 근동의 혼례 관습을 배경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정성을 신랑이 신부에게 보이는 정성과 사랑에 비유한다.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신비적 혼인에서 신부를 세례의 목욕으로 씻어주는 이는 바로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당신 신분인 교회를 목욕, 당장시켜 당신 앞에 청순한 모습으로 서게 하신다. 29절 저자의 교회론적 관심이 여기 부부관계 권고에도 잘 드러난다. 골로 3,18-19에 단 두 절로 표현된 권고가 에페 5,22-33절에 걸쳐 이어지면서, 그리스도의 교회 사랑이 남편의 아내 사랑을 위한 기준으로 언급된다. 30절 일부 사본들에는 여기에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로 된”이라는, 창세 2,23을 연상시키는 어구가 들어 있다. 31절 31-32절에서는 창세 2장이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일치를 예언적으로 설명해 준다고 본다. 이것은 이방인 구원의 신비가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이제 계시된 신비다. 저자에게 있어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 관계를 표징한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지배와 종속 관계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무상의 사랑으로 주고받는 헌신으로 해석되며 그 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이 해명된다. 창세 2.24. 33절 21절의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다” 참조. 복음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주해 겨자씨의 비유 겨자씨와 누룩의 이중비유로서 앞에는 남자, 뒤에는 여자가 나온다. 이중비유는 어록에서 옮긴 것이다. 겨자씨 비유는 그 변체가 마르 4.30-32에 수록되어 있다. 18절 어록을 옮긴 겨자씨 비유는 마르코에 수록된 겨자씨 비유보다 간략하나 그 뜻은 같다. “하느님의 나라”, 곧 하느님의 통치는 작게나마 이미 작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더 작용할 것이요, 마침내 이르러서는 막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뜻이다. 20절 예수께서 누룩 비유를 겨자씨 비유와 함께 발설하셨든 따로 발설하셨든간에 그 뜻은 같다. 21절 여기 “말”은 이스라엘의 물량 단위를 번역한 것인데 환산하면 36리터 좀 넘는다. 이는 백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분량이다. 잔치 때나 이렇게 많은 빵을 구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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