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0 연중 제31주일...독서,복음(주해) | |||
---|---|---|---|---|
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0-29 | 조회수36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1,22―12,2 -. 주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므로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십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주해 11절 “선의”란 하느님의 선의로 볼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이 부분은 “하느님께서 ...좋은 일을 하시려는 온갖 (당신의) 선의와 신앙의 실천을 권능으로 성취하도록”으로 번역된다. 12절 히브리인의 사상에 의하면 “이름”이란 그 이름을 가진자의 본체와 활동을 나타낸다. 예수의 이름 곧 예수를 받드는 것이 초대교회의 특징이다(사도 2.38; 3.16 등 참조). 2장 1절 2.1부터 바오로는 데살로니카 교회에서 일어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2절 데살로니카에는 세말이 이미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오로는 그들이 내세울 만한 근거, 즉 예언의 은사에 의한 특별계시, 이성적 추리에 의한 논거, 바오로가 썼다는 글(“편지”) 등은 모두 가치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 바오로는 단순히 여러 가지 가능성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데살로니카 신도들이 내세운 근거를 열거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다만 그러한 현혹적인 소문들이 데살로니카에 돌고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영이나 말이나 우리가 썼다는 편지”를 “우리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영이나 말이나 편지”로 번역할 수도 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해 자캐오의 집에 묵으시다 19.1-10은 루카에만 있는 특수자료. 특수자료의 순서를 살펴보면 바리사이와 세관원 예화 바로 다음에 자캐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루카가 채집한 특수사료가 구전이었든 문헌이었든간에 자캐오 이야기는 저 예화에 나오는 세관원의 회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루카는 자캐오의 이야기를 채록하는 기회에 8.10절을 가필했을 가능성이 크다. 2절 예리코에는 유다 지방과 요르단 강 건너 베레아 지방간의 교역을 감시하는 세관이 있었다. 자캐오는 그 세관의 세관장. 당시 관세는 지방세로서 갈릴래아에서는 그 지방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가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관리를 두어 직접 징수하지 않고 세관별로 임차료만 받고 일정한 기간 동안 관세 징수권을 민간인에게 빌려 주었다. 임차대계약에 따라 실재로 관세를 징수하는 민간인이 곧 “세관원”이다. 세관원은 흔히 이방인들과 접촉할 뿐 아니라 터무니없이 관세를 많이 매겨 부당하게 치부했기 때문에 직책상으로 죄인 취급을 받았다. 유다교를 올바로 믿으려면 세관원직을 떠나야만 했다. 8절 8절을 루카의 가필로 보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루카는 회개와 자선을 남달리 강조하는데, 8절의 자캐오는 회개를 결단하여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기로 작심한다. 7절과 9절을 직결시키는 것이 순리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파격적 처신에 대해 투덜거리자 예수님이 답변하시는데, 같은 사례가 마르 3,15-17에 있다. 8절엔 루카가 애용하는 낱말과 문체가 첩첩이 있다. “일어서서”; 신약성서 가운데 오직 루카복음에만 나온다. “...향하여 말하다”; 루카의 전형적인 문체로서 일일이 다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다. “소유”; 네 복음서에 열한 번 나오는데, 마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루카에만 나온다. “등처먹다”; 신약성서를 통틀어 루카 3.14; 19.8에만 나온다. 9절 원래 7절과 9절이 직결되었다고 볼 때 9ㄱ절은 본디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였겠다. “오늘 이 집”은 5절에서 따온 말이다. 루카는 예수께서 공적으로 활약하는 동안 구원을 이룩하셨다고 보았기 때문에 구원의 현재성을 강조하곤 했다. 즉,“오늘”,“이날”,“때”,“찾아온 때”에 구원이 이룩되었다고 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곱사등이 부인을 고쳐주신 때도 “이 부인은 아브라함의 딸인데”라 하셨다. 10절 예리고 시민들이 예수님의 처신을 비난하자 예수님은 자캐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니만큼 구원의 혜택을 받아 마땅하다고 답변하셨다. 이는 충분한 답변이다. 그런데도 또 다른 답변이 10절에 있는데 이는 전승자가 첨가했거나 루카가 가필했다는 인상을 풍긴다. 예수께서 비판을 받을실 때 이중 또는 상중으로 답변하신 것처럼 말하는 사례가 더러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답변 가운데 한 가지만 예수님의 참 답변이고 나머지는 전승자 또는 복음작가의 가필이다. 그리고 10절은 그 내용이 마르 2.17;루카 15장과 매우 비슷하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눈을 아래에서 위로 치켜뜨면 자기보다위에 있는 것을 쳐다볼 때입니다. 그렇다면 돌무화과나무 위에 있는 자캐오를 예수님이 바라볼 때 일것입니다. 우리도 몸을 낮추고 상대방을 이렇게 한번 바라봅시다. 아이의 머리에 자기의 머리를 대고 그렇게 바라보시는 신부님도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이는 높아질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