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 연중 제31주간 목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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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1-02 | 조회수41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주해 3절 유다인들의 할례란 포경수술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할례는 마음의 할례다. 이는 믿음과 성령에 의한 영적 할례다. 어떤 사본에는 “우리는 영으로 하느님께 예배하며”. “육”은 여기서 출신 성분이나 할례 같은 율법준수로써 얻는 인간적 이점을 뜻한다. 4절 다른 데서도 바오로는 논쟁의 필요에 따라 유다인으로서의 자기 자격을 내세운다. 5절 유다인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여드레 만에” 그 포경을 베어 할례를 베푼다(창세 17.12; 레위 12.3). 베냐민 지파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한 부족이다. 이스라엘의 첫 임금 사울은 이 부족 출신이다. 바오로 사도의 본이름이 사울이었다는 점에 유의하라. 바오로의 태생지는 소아시아 길리기아 지방 다르소이지만 과히 헬리화하지 않은 가문에서 출생했고 히브리말도 알고 있었다. 사도 22.3; 23.6; 26.5 참조. 바리사이파는 율법을 엄격히 지켰고, 따라서 죄인들과 상종하는 예수를 적극 반대했다. 6절 사도 8.3; 9.1-; 22.4; 26.9-12; 1고린 15.9; 갈라 1.13 참조. 7절 앞에 열거한 유다인으로서의 특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자신을 믿는 교만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길에서 그것을 홀연 깨닫고 유다인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포기했다. 8절 성서가 말하는 인식은 이성에 의한 이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 투신을 의미한다. 이 인식의 내용은 10-11절에 전개된다.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주해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 비유 비유의 상황묘사는 루카의 가필. 사실 1`-2절은 5,29-30을 옮기다시피 한 것이다. 또한 3절의 “그러자 ... 향해 이야기하시다”,“이 비유를 말씀하시다”역시 루카의 전형적 문체다. 이처럼 루카가 1-3절 전부를 형성. 첨가했지만, 그는 본디 예수께서 세 가지 비유를 발설하신 상황을 정확히 도로 밝혀 내었다. 4-7절과 마태 18, 12-14를 비교하여 각각 편집요소를 제거하고 나면, 비유의 어록 원형을 복구시킬 수 있는데, 대충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는다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버려둔 채 읽은 것을 찾아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그것을 되찾게 되면 자기 어깨에 맵니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그는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것을 두고 더 기뻐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늘에서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잃었다가 되찾은 이를 두고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그분은 세관원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곤 하셨다. 그 때마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그분의 처신을 비난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위의 비유로 답변하셨다. 그러니 일종의 자기변호인 셈이다. 아울러 예수님의 처신은 하느님의 처신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유의할 것이다. 6절 6절은 루카의 가필이리라. 그 까닭인즉 병행문 마태 18,12-14에는 6절이 없을뿐더러 루카의 애용어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공관복음 가운데 마태 11.19를 제외하면 오직 루카복음에만 무려 열다섯 번이나 나온다. “이웃”은 신약성서 가운데 요한 9.8을 제외하면 루카 14.12: 15.6.9에만 나온다. “불러모으고”는 신약성서 가운데 마르 15.15을 제외하면 루카 9.1: 15,6.9: 21.13: 사도 5.21: 10.24;28.17에만 나온다. “함께 기뻐하다”는 네 복음서 가운데 루카 1.58: 15,6.9에만 나온다. 7절 7절은 대체로 루카가 어록에 수록된 마태 18.13을 옮겨쓰면서 명사 ”회개“, 동사 ”회개하다“를 덧붙인 것이다. 명사 “회개”는 네 복음서 가운데 마르 1.4; 마태 3.8.11을 제외하면 오직 루카 3.3.8: 5.32; 15.7: 24.47에만 나온다. 특히 “회개가 필요없는 의인들”이란 문구의 낱말 하나하나는 루카 5,31-32에 다 나온다는 점에 유의할 것이다. 동사 “회개하다”는 마르코에 두 번 마태오에 네 번 나오는 데 비하여 루카복음에 아홉 번, 사도행전에 다섯 번 나온다. 잃은 은전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 비유 이 비유도 앞의 비유처럼 본디부터 잃음과 찾음 – 되찾음과 기쁨 – 하느님의 기쁨 순으로 엮여 있었을 것이다. 9절 9절 전반부는 루카의 가필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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