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8 연중 제32주간 화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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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1-07 | 조회수29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우리는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며 경건하게 살고 있습니다.> 3 나이 많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몸가짐에 기품이 있어야 하고, 6 젊은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신중히 행동하라고 권고하십시오. 11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주해 신분에 따라 지킬 의무 남녀노소.교직자,노예 등 각 신분에 따르는 처신의 규범을 밝힌다. 필자는 당시의 재래식 덕목을 옮겨썼지만 그리스도교적 동기를 덧붙인다. 9절 필자의 노예관에 대해서 1디모 5,1-2 참조. 필자는 노예들의 의무에 대해서만 말하고 주인들의 의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신약성서에 반영된 노예들에 대한 초대교회의 태도를 개관하면, 교회는 확고한 기존체제인 노예제도, 자체를 문제시하지는 않았고, 다만 신자 노예가 어떻게 신자답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 해결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노예제도가 좋은지 나쁜지는 판별하지 않고 노예로서 지켜야 할 의무에 관해서만 가르쳤다. 인권과 사회정의에 관한 사상을 깊이 인식하지 못했던 당시의 교회는 그 제도 자체를 불의한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좋지 못한 주인들, 특히 노예들을 학대하는 주인들, 그리고 불충실한 노예들을 비난했다. 구원받은 사람이 지켜야 할 의무의 동기 5ㄴ.10ㄴ절에서 이미 신분에 따라 합당하게 생활해야 하는 근본 동기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지만 이제 그 동기를 더욱 자세히 말한다. 필자는 여기서도 전해받은 정(定式) 표현을 사용했다. 11절 예수의 생애와 수난과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12절 예수를 통해 나타난 은총은 교육자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를 알에 된 사람은 하느님을 모르고 무시하던 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 앞에서의 올바른 생활을 배운다. 13절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남”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14절 결정적인 구원에 대한 확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주신”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복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주해 종의 처지 비유 이 비유는 루카복음에만 수록되어 있는데 루카가 고유사료에서 채집했는지 또는 어록에서 옮겨썼는지 속단하기 어렵다. 자고로 품꾼은 보수를 요구할 수 있지만 종은 무상으로 일하는 법이다. 종이 들에서는 농사짓고 목축하는 일을 하고 집안에서는 부엌일을 한다 해서 보수나 사례를 바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 예수께서는 누구를 상대로 왜 이 비유를 드셨을까? 율사들뿐 아니라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바리사이들과 이스라엘 백성은 인과응보 사상에 젖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율법을 잘 지켜 공덕을 쌓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느님께 받겠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오해한 짓거리인데 예수께서는 그것을 종과 주인의 관계로 수정하셨다. 루카는 이 비유로써 사도들의 자세를 천명하고자 했다. 즉, 사도들이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했다 해서 보상을 계산하거나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도 1고린 9.16에서 같은 뜻의 말을 한다. “실상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내게 자랑거리는 못 됩니다. 그것은 내게 부과되는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불행합니다.” 7절 예수께서는 자주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가”라는 말로 비유를 시작하셨다. 이는 으레 강한 부정을 기대하는 “...하겠습니까”, 아니면 강한 긍정을 기대하는 “... 하지 않겠습니까?”로 끝맺는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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