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 목요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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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1-09 | 조회수30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성 대 레오 교황은 400년 무렵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440년 식스토 3세 교황의 뒤를 이은 그는 행정 능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깊이 있는 설교로도 유명하였다. 레오 교황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일치와 정통 신앙을 수호하고자 이단을 물리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재임 중인 451년에 열린 칼케돈 공의회에서 에우티케스, 네스토리우스 등의 이단을 단죄하고 정통 교회를 수호하였다. 461년에 선종한 레오 교황을 1754년 베네딕토 14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제1독서 <그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여 주십시오.> 9 사랑 때문에 오히려 부탁을 하려고 합니다. 12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16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19 나 바오로가 이 말을 직접 씁니다. 내가 갚겠습니다. 주해 10절 “자식”을 얻었다는 말은 입교시켰다는 뜻이다(1고린 4.15 참조). 11절 “오네시모스”란 “쓸모있는 자”라는 뜻이다. 12절 12절은 어떤 사본에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내니, 그를, 곧 나의 마음을 받아들이십시오”로 되어 있다. 15절 바오로는 “그가 ... 그대를 떠나게 된 것은” 하며 노예의 도주를 매우 부드럽게 표현하고, 그 일로 말미암아 오히려 오네시모가 필레몬과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새로운 유대를 맺게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임을 암시한다. 16절 여기서 바오로는 오네시모에게 벌주지 말 것을 함축적으로 요청한다. 오네시모를 법적으로 풀어주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형제로 대하라는 말이다. 17절 이제 바오로는 명령법을 사용하면서 오네시모에 관한 부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동지”는 여기서 같은 신앙에 동참한다는 뜻이지만, 고대 상업용어로서는 함께 영업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19절 노예의 도주 자체가 주인에게 큰 손해를 끼친다. 게다가 오네시모는 주인집을 떠날 때 노자로 쓸 돈을 훔쳐간 것 같다. 그런데 바오로의 지도를 받고 입교하게 된 필레몬은 바오로에게 이루 다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가 오네시모 때문에 입은 손해는 바오로 자신이 갚을 터이니 자기 앞으로 계산하라고 한다. 보통 바오로는 편지를 받아쓰게 했지만 필레몬서에서 적어도 이 구절은 직접 썼다고 한다. 복음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주해 20절 루카가 앞에서 “주님, 구원받을 사람이 적겠습니까?”라는 질문을 꾸민 것처럼, 여기서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도 꾸몄을 것이다. “알아채게”는 직역하면 “관찰과 함께”. 묵시문학계에서는 종말의 시기를 미리 알아채는 것. 종말에 하느님과 인자가 오실 장소를 정확히 알아채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21절 지금의 문맥에 따라 풀이하면,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 도래 시간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 도래장소에 관해 답변하시는데, 이는 매우 어색하다. 루카가 20ㄱ절을 가필한 까닭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라는 말씀은 그 나라가 시간적으로 이미 도래했다는 뜻이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도래했으며 그 위력이 예수님의 치유기적과 구마기적으로 드러난다. 21ㄴ절은 루카의 가필일 가능성이 있다. 우선 문체상으로 “보시오. 실상”은 신약성서 중 2고린 7.11을 제외하면 오직 루카의 작품들에만 여섯 번 나온다. 그리고 내용상으로 볼 때 21ㄴ절은 구원의 현재성을 역설하는데, 이는 루카의 지론이기도 하다. 22절 지금의 문맥에 따라 22-23절을 풀이하면 제자들이 “인자의 날들”, 곧 인자가 내림하여 구원하실 날들을 보기 전에 가짜가 와서 그들을 현혹케 하리라는 뜻이다. 종말이 도래하기에 앞서 반그리스도 또는 가(假)그리스도가 출현한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22절은 루카의 가필이겠다. 우선 “그리고...향하여 말씀하셨다”는 루카의 전형적인 문체다. 또한 “날들 가운데 하루”는 신약성서 중 오직 루카복음에만 네 차례있는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날들이 오다” 또는 그와 유사한 표현이 루카복음에 흔하다. 어록에서는 20ㄴ-21ㄱ절과 23-24절이 직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록의 구절들을 풀이하면, 하느님 나라의 인자는 여기 또는 저기 어느 한 곳에 나타나지 않고 마치 번개가 번쩍할 때처럼 세상 어디에나 임하신다는 뜻이리라. 25절 25절은 루카가 9.22(마르=8.31)를 거의 그대로 옮기다시피 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록에는 “인자”가 고난을 겪는다는 말이 도무지 없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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