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1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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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1-10 | 조회수25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오늘 전례 성 마르티노 주교는 316년 무렵 헝가리 판노니아의 이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공부한 그는 군인으로 근무하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신비 체험을 하였다. 어느 날 추위에 떨고 있는 한 걸인에게 자신의 외투 절반을 잘라 주었는데, 그날 밤 꿈속에 그 외투 차림의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곧바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그는 나중에 사제가 되었고, 370년 무렵에는 프랑스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어 착한 목자의 모범을 보이며 복음 전파에 전념하였다. 프랑스 교회의 초석을 놓은 마르티노 주교는 프랑스 교회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 제1독서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7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주해 4절 1요한 1,6-7의 “어둠 안에서 거닐다. 빛 안에서 거닐다”라는 상징적 표현 대신, 2요한 4절에선 “진리 안에서 거닐다”라는 직설적 표현을 쓴다. 두 부류 표현의 뜻인 즉, 6절의 “하느님의 계명을 따라 거닐다”와 같으니, 곧 형제애 계명을 준수한다는 뜻이다. 6절 형제애 계명은 예수 친히 가르치신 것이요 교회 초창기부터 전승된 낯익은 계명이라는 것이다. 이단자들을 물리쳐라 4-6절이 윤리편이라면 7-11절은 교리편이다. 교리편에선 체린투스식 분리 그리스도론을 주창한 영지주의자들을 단죄하는 것 같다. 7절 원문에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시는 것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8절 바티칸 사본에선 ”우리가 수고해서 얻은 것“이라 하고, 시나이. 알엘산드리아 사본들에서는 ”여러분이 수고해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바티칸 사본을 따른다면, 필자인 원로가 사목적으로 노력해서 요한 2서 수신인 교우들에게 전파한 그리스도 신앙이라는 뜻이다. 9절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 머물지 않고 앞지르는 자“는 영지주의 이단자로서, 필자가 보기에 이들은 너무 진보주의적이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으로, 곧 교회의 그리스도론으로 보는 설도 있고, 요한 7,16.17; 18.19에서처럼 그리스도께서 친히 베푸신 가르침으로 보는 설도 있다. 복음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주해 26절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오느니만큼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노아의 고사를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록작가와 루카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인자의 내림을 동시사건으로 본 나머지, 인자의 내림이 다가오니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두 가지 고사를 이해했다. 26절의 “인자의 날들”은 인자가 내림하기 이전의 시기를 가리킨다. 31절 31절은 마르 13,15-16을 옮겨쓴 것이다. 32절 야훼께서 유황불로 소돔과 고모라를 태워 버리실 때 롯의 아내는 달아나다 말고 불타는 도시들을 돌아다본 죄로 그만 소금기둥으로 변했다는 고사가 있다. 32절은 롯의 아내마냥 미련을 갖지 말고,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루카가 덧붙인 구절이다. 33절 33절은 본디 단절어. 이 단절어는 구전과정에서 세 형태로 전해왔는데. 첫째 형태는 어록에, (17,33=마태 10.39), 둘째 형태는 마르 8.35에(=루카 9.24=마태 16.25). 셋째 형태는 요한 12.25에 수록되었다. 어록 문맥상으로 볼 때 “제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노아와 롯시대 인간들처럼 사는 사람이요, “잃는 사람은”회개하는 사람이다. 34절 두 남자. 두 여자 가운데 회개한 자는 구원받고 회개하지 않은 자는 멸망한다는 이중 단절어가 마태 24,40-41에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 분명히 어록에서 따온 것이다. 35절 베자 사본에는 “두 사람이 들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입니다”(36절)라는 말을 덧붙였으나, 이는 후대의 어느 필사자가 마태 24.40을 옮겨 쓴 것이다. 36절 37ㄱ절은 종말의 장소에 관한 질문으로서 20ㄱ절에 있는 종말의 시간에 관한 질문과 짝을 이룬다. 루카는 20ㄱ절과 마찬가지로 37ㄱ절도 가필했을 것이다. 37ㄴ절은 원래, 필연성을 가리키는 속담이었을 것이다. 어록에서는 37ㄴ절이 34-35절과 직결되었다. 그 뜻인즉, 인자에게 버림받은 남녀는 마치 시체와 같아 독수리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는 것, 곧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럼 루카는 37ㄴ절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시체가 있는 곳에는 또한 독수리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인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인자도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리라. 또는 인자가 내림하는 곳에 인류가 반사적으로 모여온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루카는 인자의 내림 장소에 관한 묵시문학적 질문을 일축했다. 37절 마태 24.28에서는 “시체”, 여기서는 그냥 “몸”이라고 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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