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9 연중 제33주간 토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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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1-18 | 조회수19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그 두 예언자는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습니다.>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9 모든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12 그 두 예언자는 하늘에서부터, 주해 4절 즈가 4.3.14 참조. 7절 13장에서 다시 언급될 것이다. 짐승의 짧은 기간 동안의 승리는 이미 다니 7.21에 언급되어 있다. “내가 보니, 그뿔은 거룩한 백성을 쳐서 정복했다.” 8절 묵시록의 다른 구절에서는 항상 상징적으로 바빌론, 곧 로마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명확한 암시를 보아 예루살렘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도시는 정신적으로 소돔과 이집트라고 불린다. 구약성서에서 여러번 소돔은 대표적인 방탕한 도시로, 이집트는 하느님의 백성을 증오하고 우상의 힘이 통치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11절 두 증인은 죽고 사흘 반 만에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의 숨결(영)에 의해 살아난다. 3년 반 동안 예언을 했고, 3일 반 동안 죽어서 수치를 당했다. 결국 예언하는 동안 수치를 당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아마도 에제 37,5-10의 “마른 뼈” 현시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했다 숨이 불어 왔다.그러자 모두들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서서 크나큰 무리를 이루었다. 묵시록 저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한 마른 뼈 현시의 용어를 여기서 사용하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계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12절 엘리야 승천기의 영향을 받은 두 증인의 승천은 신약성서의 승천 전승들이 전해주듯이 예수의 현양. 승천이 지닌 모든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주해 27절 부활논쟁 20,27-40은 마르 12,18-27을 비교적 충실히 옮겨쓴 것인데, 34ㄴ-36,38ㄴ-40절에 루카가 가필한 흔적이 돋보인다. 역시 마르코의 풀이를 참고할 것이다. 34절 34ㄴ-36절은 “여러분이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사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때에는 장가가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으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습니다”(마르 12,34ㄴ-35)를 루카가 확장한 것이다. 38절 38ㄴ-40절은 마르코에 없으니 루카의 가필이다. “사실 모두 하느님에게 삽니다”를 의역하여 “사실 모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삽니다”라 했다. 약간 달리 “사실 모두 하느님을 위해서 삽니다”라고 의역할 수도 있다. 39절 39절은 마르 12,32를 옮긴 것이다. 그 뜻인즉, 부활을 믿는 바리사이계 율사들이 예수님의 부활관에 찬동했다는 것이다. 40절 40절은 마르 12,34를 옮긴 것이다. 그 뜻인즉,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께 압도되었다는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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